일부에만 호의 베푸는 '나쁜 디자인'은 가라

입력 2018-11-29 13:05  

일부에만 호의 베푸는 '나쁜 디자인'은 가라
美 공중화장실 성 불평등 제기한 건축가 캐스린 앤서니 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10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화장실'이 화두로 떠올랐다. 여성의 평균 화장실 이용시간이 남성보다 긴 데도, 오래전 설치된 공중화장실의 여성용 변기 수는 남성용보다 적다. 이는 즉각적인 불편함을 야기할 뿐 아니라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청문회에 나온 캐스린 앤서니 당시 일리노이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러한 공중화장실 성 불평등 문제를 증언해 주목받았다.
건축과 디자인에 얽힌 편견과 차별을 조명해온 앤서니의 책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원제 Defined by design)이 국내에 출간됐다.
저자는 우리가 쓰는 제품과 찾는 공간의 '디자인'이 생각하는 방식을 특징짓고, 편견을 만들며, 일상생활의 틀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학교 책상 모양과 각종 비품은 왼손잡이 차별을 당연시한다. 여자 화장실에만 있는 기저귀 교환대는 육아를 엄마 몫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옷 치수표와 매장 구조 또한 남녀 양성 모두의 외모와 신체 치수 편견을 조장한다.
이러한 디자인이 즉각적인 위험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아이들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어린이 옷장이나 TV는 넘어져 사고로 이어진다. 미국 평균 체형의 남성에게 맞춰 디자인한 자동차는 여성이나 단신 남성의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평균 체형을 벗어나는 사람, 여성,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이 이러한 '나쁜 디자인' 피해자가 되기 쉽다.
저자는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라면서 "특정 소비자와 계층에게만 편향된 호의를 베풀고 불공평한 권한을 부여하는 디자인들을 참고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 당국과 기업 등이 건축 규정을 변경하도록 목소리를 내고, 직장과 학교에서도 '나쁜 디자인'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자는 것이다. 남성 화장실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를 두고, 모든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고 가족용 화장실을 늘리며, 계단을 안전하고 접근성 높게 설계하는 등 구체적인 안이 책에 담겼다.
이재경 옮김. 반니. 452쪽. 1만9천800원.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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