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주의 언급 안해 공동성명 불발 참사 피해…기후변화 이견 인정
무역갈등, WTO개혁, 이민 분야서 미 '판정승'…마크롱, 승리 자평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1일(현지시간) 무역과 지구온난화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한 견해차를 드러냈지만 결국 '반쪽자리 타협'으로 봉합하면서 파국을 피했다.
G20은 이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틀간 열린 정상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세계 무역 갈등의 중심에 자리 잡은 보호주의를 언급하지 않은 채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공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또한 미국 외 19개국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려고 마련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대한 미국의 이견을 그대로 인정했다.
19개국은 기후변화협정을 되돌릴 수 없으며 국내 상황 등을 고려해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미국은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이를 성명에 반영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올해에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에 따른 갈등 고조로 G20 공동성명 채택이 불발될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다.
공동성명은 G20의 정책 실행에 구속력이 없지만 지구촌이 당면한 현안에 대한 해법과 방향성을 담았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G20 정상회의 회의에 앞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행보는 합의점 도출을 막는 최대 복병으로 여겨졌다.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 승인을 거부하면서 모양새를 구겼고, 지난달 18일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미·중 대립 속에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불발되는 '참사'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브렉시트 등 G20 내부에는 예상외로 복잡한 대립각이 형성돼있어 G20 정상들이 통일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G20 정상들은 보호무역, 이민·난민, 기후변화 등의 쟁점에서 서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은 채 봉합하는 방식으로 공동성명 불발이라는 참사를 피하고 체면을 살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의 기간 내내 계속됐던 갈등에도 미국이 공동성명에 결국 서명한 것은 '승리'라고 자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합의를 이뤘다. 미국이 텍스트를 수용했다"며 환영했다.
무역갈등, WTO 개혁, 이민 등 껄끄러운 분야에서 미국의 목소리가 상당히 관철된 점에서 미국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동성명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행사에서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던 '보호주의 배격'이라는 문구가 미국의 강력한 반발과 입김에 힘입어 아예 빠졌다.
G20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공동성명 초안에 미국의 영향력으로 보호무역에 저항하자는 문구가 전례 없이 빠지고 '평평한 운동장(공정한 무역)을 확보한다'는 말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각각 상대편에서 수입한 2천500억 달러, 1천100억 달러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7∼8월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9월에는 2천억 달러어치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10% 관세율은 내년 1월부터 25%로 인상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불공정 통상 관행과 그와 결부된 국가안보 위협을 무역 전쟁의 명분으로 강조해왔다.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것으로 평가받는 WTO에 대한 개혁은 G20 사이에 이견이 거의 없어 손쉽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미국은 세계 무역 분쟁의 최고 법원인 WTO 상소 기구가 자신의 영역을 뛰어넘고 WTO 규칙을 위반하고 있는 등 WTO의 분쟁해결 제도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미국은 이런 이유를 들어 상소 기구에서 공석이 된 후임 위원 선정 절차에 참여를 거부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6일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캐나다, 멕시코, 스위스 등 11개 WTO 회원국과 함께 기능 마비 위기에 처한 WTO 상소 기구를 둘러싼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경장벽 건설 등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고수해온 미국은 이민과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원칙적인 언급만이 공동성명에 포함되도록 입김을 행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이 국경으로 몰려들자 군대를 배치하고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결국, 공동성명은 증가하는 이민자의 이동과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공동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penpia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