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부터…英 내무부, 7개국 국민에 허용키로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직장인 A씨는 지난여름 가족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영국을 찾았다.
히스로 공항에 내린 A씨 가족은 그러나 여행 시작도 전에 진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입국 심사를 하는데 무려 1시간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히스로 공항을 포함해 14곳에 설치된 259개 전자여권(ePassport) 게이트는 영국인과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 국민만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그 밖의 국가 국민은 별도 게이트에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 국가로부터 온 입국자 수보다 게이트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입국 심사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현재 영국 내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는 전체 95%의 승객들이 45분 이내에 입국 심사를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름 휴가 성수기인 7월 한때 히스로 공항에서 EEA에 속하지 않은 국가에서 온 방문객들은 최장 2시간 반가량을 입국 심사를 받는데 소모해야만 했다.
당시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영국인과 유럽인들은 속속 입국 심사를 마치고 떠났지만, A씨는 심사 줄이 줄어들기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어린 자녀들이 힘들어하자 A씨는 '여름 휴가지로 영국을 택한게 잘못이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다행히 자녀들이 있어 다른 승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입국 심사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A씨에게는 아직 유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내년 여름부터 A씨처럼 여행이나 출장을 위해 영국을 찾는 한국인들은 입국 심사에 드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국 내무부는 3일(현지시간) 내년 여름부터 한국과 싱가포르 국민에게 전자여권 게이트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입국자의 전자여권에 등록된 이미지와 대조한 뒤 이상이 없으면 곧바로 입국이 가능하다.
다만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 경우 별도 출입국관리 직원을 통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앞서 영국은 지난 10월 말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1차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5개국을 전자여권 게이트 이용 대상에 넣었다.
당시 발표에서는 한국이 제외됐지만, 그동안 주영 한국대사관 등이 물밑 작업을 펼쳐 이번에 새롭게 전자여권 게이트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주요국과 무역협정 체결을 희망하는 영국 입장에서는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다 이미 일본인 입국자를 추월한 한국인을 제외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인 중에서도 영국 영주권 또는 비자 소지자, 영국을 자주 오가는 이들에 한해 연간 70파운드(한화 약 9만9천원)를 내면 예외적으로 전자여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기는 했지만, 비용 부담에다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이용객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영국에 들어오는 한국인 모두가 전자여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연간 한국인 40만명을 포함해 모두 7개국 650만명가량이 빠른 입국 심사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은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 이어 추가로 한국과 싱가포르 국민이 영국을 여행할 때 전자여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일단 18세 이상 전자여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전자여권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성인과 함께 여행하는 12∼17세 청소년 역시 이용이 가능하다.
영국 정부는 조만간 구체적인 행정입법 과정을 거쳐 내년 여름부터 새 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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