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독자팀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1970년대 대한민국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실에선 이와 같은 문장이 낭독되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1968년 12월5일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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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권오병 문교부장관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 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 교육장전을 제정하라고 지시하며 제정 논의가 시작됐다. 한 달 뒤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 선포한 것은 그해 12월5일 현재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에서였다. 선포일(12월5일)은 1973년 3월30일에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 기념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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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자로 이뤄진 국민교육헌장은 각종 국정교과서의 앞쪽에 인쇄됐고, 당시 초등학생은 이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일부 학교에선 암송 대회를 열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교육계의 반발도 낳았다. 송기숙(83) 당시 전남대 교수(현 전남대 명예교수) 등 전남대 교수 11명이 1978년 6월27일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는 '우리의 교육지표'를 공동으로 발표한 '교육지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교수 11명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해직됐고, 학생 30여 명이 구속되고 제적·정학 처분을 당했다. 교수진 전원은 379일 동안 불법구금되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 전체주의 강조 등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됐고, 같은 해 선포일 기념행사까지 폐지됐다. 2003년에는 선포 기념일마저 없어지면서 공식적으로 최종 폐기 처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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