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진료 금지,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한정
"국민건강보험·의료급여 적용 안 돼 공공의료체계 영향 없어"
"공론조사위 결정 수용 못 해 죄송, 한·중 외교 문제 비화 우려"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전지혜 기자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이날 오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 과로 한정했으며,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취지를 적극적으로 헤아려 '의료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주에서 공론조사위의 첫 결정사항을 수용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제주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그러면서 공론조사위 결정은 찬반 의견이 6대 4 비율로 나온 것을 전제로 해서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 의료기관으로 활용해 헬스케어타운의 기능을 유지하고, 이미 고용된 인력에 실직 사태가 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하라는 권고안이었다고 해석했다.
원희룡 "'영리병원 조건부 허가' 정치적 책임 지겠다" / 연합뉴스 (Yonhapnews)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공개했다. 원 지사는 지난 두 달여 동안 녹지국제병원 측에 비영리병원으로 자체 전환할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으나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헬스케어타운 개발사업자인 JDC와 중앙정부나 국가기관이 이를 인수해서 비영리병원 또는 관련된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이론상 가능한 방안이었으나 추진할 주체도 없고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운영적 능력이나 구체적 방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시설을 점검한 결과 이미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피부, 성형, 건강검진에 특화된 시설과 장비, 인력이 구비된 상태여서 (제주도가) 인수해서 전환할 때의 비용이나 소요되는 여러 자원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제주도는 앞으로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 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처분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는 조건부 개설 허가 이유로 국가적 과제인 경제 살리기 적극 동참과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들었다.
조건부 개설 허가를 한 구체적인 사유로 지역경제 문제 외에도 투자된 중국 자본에 대한 손실 문제로 한·중 외교 문제 비화 우려,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 신뢰도 추락으로 인한 국가신인도 저하 우려,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 등을 제시했다.
현재 병원에 채용된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 토지의 목적 외 사용에 따른 토지 반환 소송의 문제, 병원이 프리미엄 외국 의료관광객을 고려한 시설로 건축돼 타 용도로의 전환이 불가한 점과, 비상이 걸린 내·외국인 관광객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시급성도 조건부 허가 이유로 덧붙였다.
원 지사의 이날 결정으로 제주 영리병원 도입 논란은 13년 만에 일단락됐다. 제주 영리병원 도입은 노무현 정부가 2005년 11월 국무회의를 통해 '국내·외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문제는 외국영리법인의 설립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의결하며 처음 추진됐다.
2008년에는 김태환 제주지사가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2014년 2월에는 박근혜 정부가 영리병원 규제를 완화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발표하며 영리병원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투자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서귀포시에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하고, 중국 녹지그룹을 유치해 영리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녹지그룹이 제주에 설립한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유한회사)가 제출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녹지제주유한회사는 지난해 7월 28일까지 총 778억원을 투입해 녹지국제병원을 준공한 데 이어 의사 등 인력 134명(도민 107명)을 채용하고, 한 달 만인 8월 28일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신청했다.
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2017년 11∼12월 진행된 네 차례 심의회를 통해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조건으로 한 허가를 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도에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서가 도에 제출됐고,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지난 10월 4일 도에 '녹지국제병원 불허'를 권고했다.
도는 앞서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내국인 진료 제한)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제한한 경우 진료거부 금지 등에 해당하는지 질의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제한할 경우 의료기관 입장에서 허가조건을 이행하기 위하여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는다면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고 도는 설명했다.
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 반대 목소리는 여전한 커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도민을 배신하고 영리병원을 선택했다며 원 지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도청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 도청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제주도민 배신 영리병원 선택" 국내 첫 허가에 반발 거세 / 연합뉴스 (Yonhapnews)
kh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