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통상 압박 등 ILO 핵심협약 비준 미룰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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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전교조 전체 조합원) 4만∼5만명 중 1명의 해직자가 (전교조에) 가입해도 노조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게 현행법 상황"이라며 "누가 봐도 합리적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하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 간사로, 개선위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공익위원 권고안 작성을 주도했다.
공익위원 권고안은 해고자와 실업자 등의 노조 가입 허용을 포함한 국내법 개정 방안을 담고 있다.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은 전교조 합법화와 직결된 문제다. 정부는 2013년 전교조 조합원에 해직 교사 8명이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전교조 해직자가 8명인데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면) 그 숫자가 1만∼2만명으로 늘어날 것인가, 그렇게는 상상할 수 없다. 굉장히 비현실적 가정"이라며 공익위원 권고안이 실현되면 해직자가 대거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는 현대·기아차 노조를 예로 들면서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 노동자도 기존 노조에 받아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노사관계 현실"이라며 "비정규직도 안 받아들이는데 실업자를 조합원의 주된 구성 요소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실적 가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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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간담회는 경사노위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공익위원 권고안에 관한 언론 보도 등에 오해가 많아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간담회를 마련했다고 경사노위측은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공익위원 권고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로 '소방관이 노조에 가입해 파업하면 불은 누가 끄느냐'는 지적을 꼽았다.
그는 "(공익위원 권고안이) 소방관의 단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 의미는 노조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라며 "공무원노조법을 보면 공무원은 일체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가 금지돼 있어 노조를 허용하더라도 파업이나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공익위원 권고안이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공익위원 안을 노동계 편향적인 안으로 생각한다면 공익위원 안이 그런 게 아니라 국제노동기준이 그런 것"이라며 "그 기준대로 하는 게 노동계에 유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노사 어느 쪽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느냐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사관계법, 제도, 관행이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사용자 측에 편향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을 국제노동기준에 따라 (바로잡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16개인데 이 중 9개에서 사실상 8개 ILO 핵심협약 내용을 노동 기준으로 포함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국제사회에서 갖는 의미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나라가 한-EU(유럽연합) FTA 위반 상황이라는 점을 거론하고 "최근 ILO 핵심협약 미비준에 대한 EU 측의 통상 압력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계속 핵심협약 미비준으로 한-EU FTA 위반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ILO 핵심협약 비준은 국내법적으로 대통령 공약 이행에 그치는 게 아니다"라며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EU FTA 위반 상황을 해소하지 않으면 상당히 중대한 상황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선위원회는 노동자 단결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익위원 권고안 발표 이후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 관한 국내법 개정 방안 논의에 착수했다.
경영계는 단체협약 유효 기간 확대, 부당노동행위의 형사 처벌 제외, 직장 점거 파업 금지, 대체근로 허용 등 입장을 제출했다. 노동계는 교섭 창구 단일화 개선, 단체협약 적용 확대, 쟁의행위 목적 확대 등을 입장으로 내놨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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