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해오던 조치…북미협상 본격화 후 첫 인권제재 주목
2차 북미정상회담 '지렛대' 확보 조치 분석…비핵화 협상 부정영향도 우려
(뉴욕·서울=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강건택 기자 =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이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이 10일(현지시간) 북한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인권제재 카드를 꺼내 들면서 그 배경과 향후 북미협상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인권유린 관련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이어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꼽히는 최 부위원장도 제재 대상에 올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제재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한 이후,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 문제를 놓고 미 정부가 단행한 첫 제재 조치라는 점에서도 그 배경이 주목된다.
美, 北 김정은 최측근 최룡해 제재…인권유린 겨냥 / 연합뉴스 (Yonhapnews)
미 재무부는 이날 북한의 인권유린 책임을 물어 최 부위원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 등 핵심 인사 3명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제재는 기본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6년 2월 서명한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미 국무장관은 180일마다 북한의 인권실태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낸 북한의 인권유린 관련 보고서에서 최 부위원장 등 3명의 이름을 올렸고, 재무부는 이에 기초해 이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한 것이다.
이들이 이미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조직의 수장이라는 점도 이날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위원장은 그동안 북한 최고지도자가 겸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직지도부장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조직지도부는 지난 2016년 7월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기관 8곳 중 하나다.
정 보위상이 속한 국가보위성(2016년 당시 국가보위부)과 박 부위원장이 이끄는 선전선동부 역시 미 재무부의 제재 리스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미국은 당시 이들 8개 기관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등 개인 15명에 대해서도 인권유린 혐의로 제재를 단행했다. 이어 지난해 1월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같은 해 10월에는 정영수 노동상 등에게도 마찬가지 조치를 했다. 앞서 3차례에 걸쳐 총 29명, 기관 13곳을 제재한 것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번 인권 관련 제재의 시점이다.
기존 제재는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북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고 미국의 대북 압박도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이에 반해 이번 제재는 북미 간 협상이 본격화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인권 관련 제재다.
특히 미 국무부는 관련 법에 따라 180일마다 보고서를 내야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작년 10월 말 3차 보고서 이후 1년 2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나왔다.
이 점에서 이번 대북 제재가 단순히 인권 문제를 넘어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대북 압박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올해 들어 북미 대화가 시작돼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협상 국면이 이어지는 시기에 나오지 않던 보고서가 최근 북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달 뉴욕에서 열 예정이었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무산되는 등 북미 간의 대화에 표면적으로 진척이 없는 가운데 내년 초로 추진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이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유인하기 위해 '인권 카드'를 활용해 압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구상을 띄우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NN을 통해 미국의 이번 제재가 차기 정상회담을 위한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부위원장 등에 대한 이날 제재가 미국이 추진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북한 인권토의 무산 직후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당초 이날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북한 인권 토의를 위한 안보리 회의 개최를 요청했지만 중국, 러시아 등의 반대로 회의 개최에 필요한 '9개국 지지'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4년부터 4년 연속 이어져 오던 안보리에서의 북한 인권 토의는 5년 만에 무산됐다.
따라서 이번 제재는 흔들리는 대북 압박의 고삐를 인권을 고리로 다시 당기려는 의도가 깔렸을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눈을 감는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내부용 조치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재무부가 이날 발표에서 2016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환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클링너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어젠다에서 인권 문제를 빼놓았다는 비판과 유엔 안보리 북한 인권토의 무산에 대한 반응으로 이날 제재를 단행했을 가능성도 제기하면서 "북한의 끔찍한 인권침해 역사를 다시 인정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북한 전문 웹사이트로 유명한 '38노스'의 운영자인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은 "3명의 관리를 제재한 것은 '트집 잡기'(ankle biting)라고 부르고 싶다"며 "좋아보이지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재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압박 의지가 담겼든 그렇지 않든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유엔 제3위원회를 통과하고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의 채택을 앞둔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미국의 인권제재에 반발하면서도 2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수위 조절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북미가 평화적 해법을 찾는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화의 판을 깨는 돌발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의지를 거듭 밝혀왔고,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 "성과를 거두면 경제제재 해제(removing)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북한을 달래 정상회담으로 견인하려는 신호도 계속 발신되고 있다.
물론 비핵화 협상을 떠나 인권 문제 그 자체로서 개선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미국은 계속해서 북한 정권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 침해를 비난해왔다"며 "미 행정부는 전 세계 인권 유린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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