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ㆍ사필귀정ㆍ새옹지마ㆍ백절불굴 등에 심경 투명
경찰에 유독 독설…"B급 정치", "진실보다 권력 선택"
'혜경궁 김씨' 논란 정점 땐 "아내 빨리 자유롭게 되길"
(수원=연합뉴스) 김광호 기자 = 소년공으로 출발해 노동 인권변호사, 성남시장을 거쳐 인구 1천300만명을 대표하는 경기도백과 잠재적 대선 주자군의 반열까지 치고 올라온 이재명 경기지사.
거칠 것 없이 달려오며 남다른 인생 스토리를 써온 그가 11일 친형(이재선·사망)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과 관련해 검찰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한 채 기소됨에 따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이어지는 의혹 제기와 자고 나면 터지는 새로운 내용의 언론 보도, 잇따른 경찰과 검찰 출석에 맞춰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 그는 때로는 격분하고 저항했으며, 때로는 달관한 듯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사정 당국 수사 과정의 변곡점들을 지날 때마다 그의 복잡미묘한 심경과 처지를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드러냈던 말들을 모아봤다.
이재명 "예상했던 결론…저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원" / 연합뉴스 (Yonhapnews)
◇ "사슴을 말(馬)이라 한다"…격분·저항
이 지사는 경찰 수사 과정에 대해 수시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로 더 잘 알려진 '정의를 위하여' 트위터의 계정주는 부인 김혜경 씨이며,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밝힌 지난달 17일 오전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경찰이 수사가 아닌 B급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사슴을 말이라고 잠시 속일 수 있어도 사슴은 그저 사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자신이 계속 거론해온 '사필귀정(事必歸正)'처럼 부부 모두 결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10월 28일에는 경찰의 친형 강제입원 직권남용 혐의 조사와 관련해 의혹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촛불정부 소속 경찰이라 할 수 있느냐? 국민의 법정에 맡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준 떨어지는 수사', '혜경궁 김씨 계정 소유주가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경찰이 밝힌 스모킹건이 허접하다' 등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경찰에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거론한 일부 정치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로 응수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이들 문준용 씨의 '특혜채용 의혹'까지 거론, 같은 여당 내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지사는 보수 야당은 물론 민주당 안에서까지 거론된 지사직 사퇴 및 탈당 요구에 대해 "가혹한 정치적 공격에 해당한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달 24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출석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트위터 계정주 사건의 본질은 이간계"라며 "트위터 글이 죄가 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선, 먼저 (문준용씨의) 특혜채용 의혹이 '허위'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뒤 이를 바탕으로 '허위사실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밖에 없다"고 밝혀 당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이번 사건을 '친문 vs 박해받는 도지사'라는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적지 않게 나왔다.
◇ "인생무상이죠"…달관·초연 그리고 비애
그렇다고 그가 늘 반발하고 비판하고, 저항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월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감에서 이 지사는 자신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상황과 관련한 소회를 묻는 한 의원의 질문에 "인생무상이죠"라며 초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조사하면 다 밝혀질 일"이라며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아니겠냐. 사필귀정일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나빠 보이나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게 밝혀질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지난달 24일 검찰 조사 이후 나흘 만에 SNS에 올린 글에서는 "지금 광풍에 어둠 깊으나 곧 동트는 희망새벽이 올 것"이라고 한 뒤 "동지와 성원하는 국민이 계시다. 백절불굴 의지로 뚜벅뚜벅 가겠다"라고 했다. 현 위기 탈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밖에 이 지사는 지난 10월 16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SNS가 저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족쇄가 되어 가고 있다"며 "작년 대선 경선 때를 되돌아봤을 때 '싸가지' 없고 선을 넘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제 탓이다"라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며칠 뒤 다른 방송에서는 '경선과정에서 문 후보를 공격한 면이 (당내 비토에)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제가 보기에도 과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니 지나친 것 같다"며 "(나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업보라고 생각하고 감수하려 한다"라고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인 이 지사가 '친문 진영'에 화해의 손을 내민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 "장판교의 장비 심정"…착잡함과 비애
이 지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착잡함과 비애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10월 13일 배우 김부선 씨 등이 거론한 자신의 '신체 특징'에 대해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장판교 앞에 홀로 선 장비의 심정이다. 그러나 친구와 지지자 여러분을 믿고 든든하게 버티겠다"라고 썼다.
'장판교 앞에 홀로 선 장비'를 언급한 것은 거대하게 몰려오는 각종 공격과 음해를 '나 홀로' 감내해야 하는 비주류 정치인의 착잡한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가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송치한 지난달 19일 그는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고 비난한 뒤 "때리려면 이재명을 때리고, 침을 뱉어도 이재명에게 뱉으라. 가족을 이 싸움에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달 27일 트위터 계정 관련 자택과 집무실 압수수색 당시 이 지사는 "실체가 빨리 드러나 제 아내가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며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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