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의 참회 "MB정부서 제몫 못해…인권 파수꾼 되겠다"

입력 2018-12-11 14:58  

인권위의 참회 "MB정부서 제몫 못해…인권 파수꾼 되겠다"
MB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故 우동민 활동가 인권침해 조사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청와대 관계자가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의혹을 인지하고도 침묵했습니다. 이듬해 말 겨울 인권위 점거 농성에 나선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적 조치도 소홀히 했습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11일 2008∼2010년 있었던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장애인 인권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최 위원장은 "블랙리스트와 우동민 활동가 등에 대한 인권침해 건은 8∼10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진상을 밝히고 필요한 조치를 함으로써 국가인권기구로서 제 역할을 못 한 지난 세월의 과오를 만회하고 인권 파수꾼의 역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며 사과 배경을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인권 옹호 기관인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인권만을 판단의 나침반으로 삼아 인권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있다"며 "하지만 인권위는 블랙리스트 존재를 알고도 침묵함으로써 인권위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기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반성했다.
아울러 "중증 장애인이 다수였던 당시 농성 참여 활동가들에게 최소한의 활동 보조 지원, 보온 조치 제공 등 인권적인 조치를 소홀히 함으로써 인권기구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고 인권기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스스로 독립성을 약화했고, 그 결과 지난 정부에서는 인권위의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했다"며 "2009년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에 관한 재판부에 의견서 제출 지연, 2015년 백남기 농민 물대포 건에 대한 때늦은 수사 촉구 등 정부에 부담을 주는 안건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처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우동민 활동가의 사망에 관해서는 "인권위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시정기구로서 당시 점거 농성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 대응과정에서 농성 참여 활동가들의 존엄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지난 8년간 인권위가 제대로 된 진상 파악 없이 이런 인권침해 행위를 지속해서 부인함으로써 유족과 활동가들의 절망과 분노는 더 커졌을 것"이라고 유족에게 사과를 전했다.
최 위원장은 "인권위는 이 두 사건을 국가인권기구가 그 활동에 기초가 되는 독립성을 잃거나 인권 옹호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인권위 역시 언제든 침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아는 뼈아픈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전날 열린 제19차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한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우동민 활동가 및 장애인 인권활동가 인권침해 진상조사'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진상조사 결과,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인권위 내 특정 인사를 축출하거나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블랙리스트는 인권위가 2008년 10월 2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대한 경찰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이후 본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월 사망한 우동민 씨 사건에 대해서는 우 씨 등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이 2010년 말 인권위 건물 내에서 점거 농성을 벌일 때 인권위가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음으로써 우 씨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인간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인정했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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