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메이, 불신임 위기 넘겼지만 브렉시트까지 갈 길 멀다

입력 2018-12-13 08:37   수정 2018-12-13 13:58

英 메이, 불신임 위기 넘겼지만 브렉시트까지 갈 길 멀다
EU와의 합의안 수정 뒤 다시 의회 승인투표 벽 넘어야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노 딜' 브렉시트·조기총선 가능성 여전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열린 신임투표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당분간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메이 총리 앞에는 내년 3월 29일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앞두고 의회의 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EU로부터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EU가 "재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은 만큼 브렉시트 합의문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경우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는 물론, 노동당 등 야당의 반대를 물리치기까지는 큰 난관이 예상된다.



◇ 신임투표서 승리했지만 반대표 117표 나와
이날 열린 보수당 당 대표 신임투표에는 모두 317명의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메이 총리를 당 대표로 신임하느냐'를 놓고 벌어진 투표에서 200명의 의원은 찬성표를, 117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메이 총리는 317명의 의원 중 찬성이 절반을 넘어 일단 당 대표 및 총리직 유지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117명의 의원이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의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이번 투표가 메이 총리에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리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동안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주장해 온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 연구단체'(ERG)는 80명가량의 의원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반대한다고 밝혀 왔다.
특히 메이 총리는 이날 신임투표에 앞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면서, 반대세력을 달래기 위해 브렉시트를 마무리한 뒤 2022년 총선 이전에 사퇴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해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자유민주당 등 주요 야당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 표결에 부쳐질 경우 부결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집권 보수당 내에서 100명 이상의 의원이 메이 총리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만큼 향후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EU 정상회의서 아일랜드 '안전장치' 수정 합의 여부 주목
신임투표 고비를 넘긴 메이 총리 앞에는 EU 설득이라는 큰 산이 놓여 있다.
총리직을 유지하게 되면서 메이 총리는 당초 예정대로 13∼14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참석, 브렉시트 합의안 중 영국 의회의 반발이 가장 심한 '안전장치'(backstop) 방안의 수정을 시도할 계획이다.
앞서 영국과 EU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내용을 브렉시트 합의안에 담았다.
문제는 일단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영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종료할 수 없어 EU 관세동맹에 계속 잔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안전장치' 하에서는 북아일랜드만 EU 단일시장 관할에 놓이게 되는데, 이 경우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 다른 규제가 적용되면서 영국의 통합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메이 총리는 '안전장치'가 가동되더라도 영국이 일시적으로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추가적인 '법적 확약'을 얻어내기를 원하고 있다.
이날 신임투표 결과가 나온 뒤 메이 총리는 총리 관저 앞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북아일랜드 '안전장치'에 관한 하원의 우려를 들었다"면서 "내일 EU 이사회에 가서 이같은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확약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영국과 EU의 입장차가 크다는 점이다.
EU는 '안전장치'와 관련한 내용을 보다 명확화하는 작업은 가능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문에 손을 대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브뤼셀에서 메이 총리와 만난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EU 정상회의에 앞서 메이 총리와 오랜 시간 솔직한 논의를 가졌다"면서 "분명한 것은 EU 27개국은 (메이 총리를) 돕기를 원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이다"라고 적었다.
같은 날 베를린에서 메이 총리를 만난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더는 재협상이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 제2 국민투표·'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 배제 못해
내년 3월 29일 브렉시트까지 불과 4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영국과 EU의 재논의 결과에 따라 브렉시트의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지난 11일 예정됐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를 연기하면서 내년 1월 21일 이전 새로운 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영국 입장에서 가장 낙관적 시나리오는 메이 총리가 EU로부터 영국이 영구히 '안전장치'에 갇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법적 확약'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승인투표 가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이보다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안전장치'와 관련해 불명확한 부분을 보다 명확화하는 식의 작은 변화를 추진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EU 측은 이미 '안전장치'에 관한 영국의 우려를 달래기 위해 의향서(LOI)를 체결하거나, '안전장치'를 피하기 위한 노력에 관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담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만으로는 영국 의회 내 반대파들의 분노를 달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가 다시 의회 승인투표에 나서더라도 여전히 부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예 메이 총리가 EU와의 논의에서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메이 총리는 만약 EU가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노 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을 날릴 수 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이같은 '노 딜'에 찬성할 수 있지만, EU 잔류 지지 의원들은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나 다른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 대안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인 노동당의 정부 불신임 제출로 조기총선이 열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노동당은 일단 메이 총리와 EU와의 재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정부 불신임안 제출 시기를 저울질하겠다는 계획이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조기총선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의 의원이 조기총선 동의안에 찬성하거나, 내각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다시 14일 이내에 새로운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에서 의결되지 못하는 경우 조기총선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내년 3월 29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조기총선으로 인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브렉시트를 예정된 시기에 단행하지 못하면서 영국 내 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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