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주의 협력 틀 퇴조하고 反이민·증오·차별 구호 난무…힘 잃은 '관용·통합'
신 권위주의 앞세운 스트롱맨들 '장기집권' 채비 돌입…'신인'들도 속속 합류
극우 포퓰리즘 정치 '대약진' 양상…유럽 전역 확산 이어 남미로 영역 넓혀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2018년은 세계 정치지형이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은 해였다.
지구촌 전반에 걸쳐 관용과 다양성,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퇴조한 자리에 반(反) 이민과 민족주의, 증오와 차별의 구호가 침투했고, '극우 포퓰리즘'이 새로운 정치흐름으로 등장했다.
이는 철권 리더십과 신 권위주의를 앞세운 '스트롱맨 전성시대'와도 궤를 같이한다.
특히 올해 주요국의 정권을 장악한 기존 스트롱맨들이 속속 '장기집권' 채비에 나선 데 이어 '신인'들까지 대열에 합류하면서 글로벌 정치 지배구조에 변곡점을 형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우주의와 자국 중심주의가 확산하는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의 기수역할을 맡았던 지도자들과 중도적 지도자들은 잇따라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하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역 증진과 경제현안 공동대처를 중심으로 한 다자협력의 틀이 흔들리고 있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등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영토분쟁 등으로 인한 먹구름도 짙게 드리워졌다.
기존 국제질서와 외교의 문법이 흔들리면서 바야흐로 전 세계가 정치적 대전환기를 관통하고 있는 분위기다.
◇ 장기집권 기반 다진 스트롱맨들
스트롱맨의 대표주자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중하위 계층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그는 올해 집권 2년차에도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보호무역주의와 반(反) 이민정책에 드라이브를 늦추지 않았다.
올해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은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갈등과 대립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식 우선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그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에 하원을 내주기는 했으나 상원 수성에 성공하면서 여전히 '마이웨이'식 내정과 외치를 펴나가고 있다. 코드 인사를 통한 집권 2기 채비도 서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중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마오쩌둥 시대의 독재를 막기 위해 마련한 국가주석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해 장기집권을 막는 안전핀을 뽑아냈다. 정치적 급변 상황이 없다는 전제하에 사실상 '시황제'의 탄생을 알렸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승을 거두며 4기 집권체제에 들어섰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영국 내 러시아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 등으로 러시아가 곤궁에 처했지만, 러시아인들의 선택은 푸틴이었다.
임기를 채워 2024년까지 통치하면 20년간 크렘린궁의 주인이 된다. 푸틴 체제의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군함을 나포하며 힘을 과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올해 내내 '메이지 유신'을 운운한 끝에 지난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2021년 9월까지 일본을 이끈다.
아베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메이지 조상들처럼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 시기"라며 우익 정서에 호소해왔다.
동유럽과 남미 등에서도 스트롱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브라질의 새 대통령에 우파 사회자유당(PSL)의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가 당선됐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군부 독재를 미화하고 차별주의를 활용한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그는 난민을 '쓰레기'에 비유하며 노골적 반난민 정서를 드러냈다.
올해 4월 헝가리 총선에선 '동유럽의 트럼프' 또는 '리틀 푸틴'이라고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반난민·반EU를 무기로 내세워 4선에 성공했다.
◇ '위기의 계절' 메르켈·마크롱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자유 세계의 마지막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올해 사정이 여의치 않다.
최근 몇 년간 100만 명 이상의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인 데 대한 반발 등으로 철옹성 같던 메르켈 총리가 급격히 흔들렸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난민 정책에 대한 반발 등으로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부진하자 메르켈 총리는 차기 총선 불출마와 함께 기독민주당 대표직 사임을 선언했다.
메르켈 총리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수세에 몰려있다.
'노란 조끼' 시위에 유류세(탄소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의 흔들리는 리더십은 흔들리는 중도 정치의 위기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 약진하는 극우…북유럽으로 북상하고 남미로도 확산
올해 유럽을 중심으로 극우 세력은 더욱 몸집을 불리며 정치적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과 프랑스 대선, 독일 총선, 오스트리아 총선 등에서 극우 세력이 급성장한 데 이어 올해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6월 극우·포퓰리즘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새 이탈리아 정부는 가뜩이나 심각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내년도 대규모 적자 재정을 편성해 유럽연합(EU)과 충돌하고 있다.
지난 6월 슬로베니아 총선에서도 반난민 캠페인을 벌여온 우파 정당 슬로베니아 민주당이 제1당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북유럽에도 극우 바람이 불었다. 지난 10월 스웨덴 총선에서 반난민을 앞세운 극우 성향의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제3정당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 제3 정당으로 부상한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선전하며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남미로도 극우정치의 돌풍이 확산되고 있다.
최대국가인 브라질에 극우 성향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상징적이다. 그는 군부독재 미화와 성·인종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을 몰고 다녔지만, 기성 정치의 부패와 무능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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