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서 '히딩크 조력자'로 4강 신화 창조에 일조
한국에서는 감독으로 큰 성과 못내…'베트남의 영웅'으로 우뚝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박항서 리더십'이 베트남 축구 팬들의 염원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며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의 정상 탈환을 지휘하며 '박항서 매직'을 완성했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한 베트남은 15일 안방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1-0으로 이겨 1, 2차전 합계 3-2 승리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후 1년 2개월 만에 이뤄낸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역사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_ 챔피언십에서 U-23 대표팀을 지휘해 베트남 축구 사상 첫 결승 진출과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쌓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축구 팬들은 베트남의 주산물인 쌀과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쳐 '쌀딩크'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이어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베트남의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진정한 시험 무대는 이번 스즈키컵이었다.
2008년 우승 이후 10년 가까이 정상 복귀 꿈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에 베트남 팬들은 '박항서 매직'으로 스즈키컵 우승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박 감독은 마술을 부리는 듯한 뛰어난 용병술과 지도력으로 꿈을 현실로 바꿔놨다.
조별리그 무패, 무실점 행진을 지휘한 박 감독은 4강 상대였던 필리핀을 따돌리고 결승행 티켓을 따냈고, 말레이시아와 결승에서도 1차전 원정 2-2 무승부를 지휘했다.
2차전을 대비해 교체 멤버였던 하득찐과 응우옌후이흥을 선발로 기용해 주전들의 체력을 아끼면서 얻어낸 결과여서 의미가 컸다.
이어 안방 2차전을 1-0 승리로 장식하면서 우승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지난해 10월 사령탑 취임 직후 베트남의 주력이었던 포백 수비진을 스리백으로 전환하고, 선수들의 장점을 끌어내 전력을 극대화한 박 감독의 지도력이 일궈낸 값진 성과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 무대에서는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지도자였다.
경남 산청 출신인 박 감독은 경신고와 한양대를 거쳐 1981년 제일은행에서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1981년 일본과 친선경기 때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고 1985년 럭키 금성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지만, 선수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1988년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2000년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선임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조력자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앞장섰다.
그는 월드컵 직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했다. 히딩크식 훈련법을 대표팀에 이식했지만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동메달에 그치는 바람에 석 달 만에 경질됐다.
이어 2005년 경남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된 것을 시작으로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를 차례로 거치며 K리그 구단을 이끌었다.
경남을 리그 4위로 올려놓고, 전남의 FA컵 준우승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구단과 갈등 속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랬던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축구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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