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열람·공소장 일본주의 공방도 계속…검찰 "공소사실 의미 이해 부족"
임종헌 측 "피의사실 공표로 여론법정에서 이미 심판받아버린 사건"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59·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혐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렇게 변론했다.
변호인은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일 수는 있어도 직권남용은 아니다"면서 "문제가 된 피고인의 행위는 대부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기획조정실장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으므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의 경우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인이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 아니다"라며 "재판부의 법관들은 법원행정처와 별개인 독립 기관으로, 일방적 지시가 아닌 부탁을 들어 준 것이므로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이 밖의 공소사실과 혐의 등에 대해서는 아직 기록의 열람·등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심의관들이 지시받은 것이 의무 없는 일이 아니려면 정당한 명령이어야 한다"며 "피고인의 위법·부당한 명령에 따라 심의관들이 보고서를 작성한 만큼 이는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직권남용"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경력 10년 이상의 중견 법관인 심의관들이 단순히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만큼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검찰은 임 전 차장 공소사실의 전제가 되는 '사법행정권'의 존재와 범위, 한계 등에 대해 관련 법규와 선행 연구 등을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사법행정의 직무감독 권한이 일선 재판부의 재판 사무에도 제한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면서 일본과 독일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자 임 전 차장 측은 "일본이나 독일에서 사법행정이 일선 재판에 관여한 경우 직권남용으로 처벌한 예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검찰에서는 "재판독립 침해에 관해 수사기관이 직접 나선 사례는 저희가 살펴보기에 확인되지 않다시피 하다"면서도 "다만 이는 각국의 상황과 체계, 제도의 문제로, 이를 형사화한 저희의 입장에서는 각국의 침해사례를 보면 구성요건상 범죄가 된다"고 재반박했다.
양측은 지난 공판준비기일부터 제기된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의 위배 여부나 증거기록 열람·등사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갔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밖에 법원에서 예단을 갖게 할 서류나 기타 물건을 첨부·인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로 확립됐다.
검찰은 "변호인은 마치 검찰의 판단이나 의견이 나타나면 무조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는 식"이라며 "그러나 공소사실은 검찰의 법률적 판단과 의견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조건 예단을 준다는 주장은 공소사실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법원행정처에서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장기적으로 행한 범행으로, 각각의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공모관계나 동기, 목적, 배경, 경과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며 "그래야 피고인도 심판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해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244쪽에 달하는 사법사상 최장의 공소장을 읽으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일탈 남용을 회고하는 백서를 보는 듯하다"며 "이미 유죄로 보일 만큼 검찰의 상세한 의견과 부정적 평가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공소장 일본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여론몰이에 의해 이미 피고인이 여론의 법정에서 심판 받아버린 사건"이라며 "피고인은 재판도 받기 전에 공소장 하나로 중범죄자가 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화 '변호인'의 대사를 소개하겠다며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피고인을 이미 죄인 취급하는 어떤 관행도 인정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변호인은 여전히 검찰이 일부 증거기록의 열람·등사만 허용하고 있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가능한 범위에서 열람·등사를 허용했음에도 변호인 측이 말을 바꿔 가며 재판을 공전시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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