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죄짓고도 '진료 재개'…자숙하지 않는 의사들

입력 2018-12-20 06:13   수정 2018-12-20 09:18

[김길원의 헬스노트] 죄짓고도 '진료 재개'…자숙하지 않는 의사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요즘 일부 의사들의 일탈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리수술에서부터 오진, 음주사고 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도 일탈을 저지른 의사들은 국민은 물론이고, 묵묵히 환자를 진료하는 동료 의사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처벌이 늦어지고, 여론이 잠잠해진다 싶으면 슬그머니 의료 현장에 복귀해 진료를 재개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환자를 뇌사상태에 빠트려 구속됐던 부산의 한 정형외과 원장이다. 그는 석방된 지 10일 만에 영업을 재개했다. 구속 상태에서 풀려난 만큼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현행 의료법을 악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모 대학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산부인과의 한 교수가 자신이 맡은 수술 3건을 후배 의사에게 대리수술을 하도록 해 논란이 일자 병원 측이 해당 교수에게 무기정직의 징계를 내렸지만, 정직 8개월 만에 진료에 복귀한 것이다.
당시 병원은 그가 더욱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는 것도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우호적일 리 만무했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조짐이다.
성형외과 원장 A씨는 속칭 '우유주사'로 불리는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수백회에 걸쳐 불법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다. 그가 프로포폴 투약으로 몇 개월 사이 벌어들인 돈만 수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1심에서 불법 진료를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이후 그는 지인들과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곧 진료에 복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가 된 병원의 홈페이지에서도 해당 원장을 진료 의료진 중 한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의료법 제66조 자격정지 조항과 시행령 32조를 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에 대해 1년 이내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에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도 포함돼 있어 A원장은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자격이 정지돼야만 한다. 만약 의료인이 자격정지 처분 기간에 의료행위를 하면 면허 취소 사유가 된다. 실제로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자격정지를 처분받고도 프로포폴을 투여하는 의료행위를 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면허정지나 면허취소 등의 처분이 늦어지는 건 법원 판결이 보건복지부에 전달돼 실제 행정절차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허점을 틈 타 범법행위를 한 의료인이 슬그머니 진료를 재개해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복지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막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자로 '자숙(自肅)'이라는 표현이 있다. 잘못을 저지른 고위층이나 유명인들이 흔히 쓰는 말 중 하나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원래는 법적인 처벌과 별개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심하겠다는 사죄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의미로만 보자면 자숙은 죄를 지은 사람 누구에게나 요구된다.
물론 해당 의사 입장에서는 병원 임대료나 직원들의 급여 때문에라도 하루라도 더 진료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강남의 성형외과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그들의 처신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자숙이 필요한 건 불문가지다. 이는 거창하게 의사로서의 사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개인의 양심 문제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한 미국 변호사 대로우의 명언에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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