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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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하는 일.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힘들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일.
마치 오른 적 있는 바위를 끊임없이 반복해 올라보는 일.
20일 서울 마포구 까페창비에서 만난 박준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를 이같이 평가했다.
등단 10주년을 맞이한 박 시인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후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를 최근 내놓았다.
이번 시집에는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4부에 걸쳐 총 51편 시가 담겼다.
첫 시집을 11만부 팔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그는 대중성뿐만 아니라 문학성 측면에서도 '좋은' 시를 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제 작품이지만,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내면 제 손을 떠나 관여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2년 전에 이미 완성됐지만, '이게 최선이야'라고 스스로 수긍할 수 있을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박 시인은 '시간의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은 끊임없이 현재를 잃고, 거기서 오는 상실감 속에서 죽음과 유사한 경험을 한다"며 "다시 오지 않는 시간 등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은 존재하지만 곧 없어질 것이 자명한,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시인은 다른 한편으로 현재를 잃는 동시에 맞이하는 미래를 짚어낸다.
제목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장마'라는 시가 대표적인 예다.
한 문장이 시집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는 작가의 제목에 대한 관점을 담은 이 구절은 고백의 말이다.
'볼 수도 있겠다'는 '보고 싶다'처럼 직접적이지도 않고, '보았다'처럼 회상의 언어도 아니다.
"만나고 싶다는 고백이 충분히 전해지면서도 언젠가 함께 할 수 있다는 바람을 담담히 담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밖에 박 시인 시에는 그가 일상에서 겪은 소중한 순간들이 담겼다.
가깝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애정이 담긴 말, 시의 한 구절 같은 아름다운 말을 들으면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그는 늘 고민한다.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말에서 시를 착안하곤 합니다. 좋은 말을 잡아 놓고 그 말을 마음속에서 계속 굴리면 눈을 굴릴 때처럼 커져서 작품이 되곤 하죠."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생활과 예보·23쪽)
이번 시집에서 박 시인이 특별히 마음을 준 시는 시 쓰기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담은 '바위'다.
그는 이 시를 쓰면서 북한산 골짜기에 있는 바위를 수없이 올랐다.
"문학적, 사회적인 측면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내게 시가 무엇일까, 그 고민을 담았습니다. 이미 올라본 바위니 다시 오르지 않고 써도 될 텐데 왜 계속 오르는 것일까. 하늘이 넓어지는 것, 물이 흐르는 것은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됩니다. 제가 글쓰기에 갖추는 예의인 것이죠.
'하늘이 넓어지려 넓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흐르려 흐르는 것이 아니듯 흐릿해지는 일에도 별다른 뜻이 있을까마는
다만 어떤 예의라도 되듯 바위 밑 여전히 진한 녹빛을 내는 소가 쉴 새 없이 몸을 뒤집고 있었습니다'('바위' 부분·42∼43쪽)
박 시인은 자신의 시가 독자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이유로 "조금 넓은 보편성"을 꼽았다.
다른 시인에 비교해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공감받을 포인트가 많아 남녀노소 두루 사랑받을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 생계 때문에 편집자와의 일을 병행하지만, 그는 문학의 입지가 과거보다 좁아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시인은 "과거 작가들도 번역하거나 학교 또는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등 직업을 갖고 있었다"며 "시를 쓴다는 것은 노동이 아니니 문학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는 것이 문학의 왜소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문학이 안 읽히는 것보다 읽히기 위해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문학답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지금 소설가, 시인들이 잘하고 있어요. 언젠가 독자들이 문학을 더 많이 찾는 순간에 문학이 문학다운 모습으로 맞아줬으면 합니다."
언젠가 그림책에 들어갈 정도로 맑은 시를 쓰고 싶다는 그는 독자들이 자기 시집을 읽은 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시집을 잘 읽어줄 만한, 혹은 문득 떠오르는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줬으면 합니다. 새것을 사서 주는 것도 좋겠지만, 읽은 책에 선물의 글귀를 써서 주면 가장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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