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추락 불난 차량 안으로 뛰어들어 운전자 구조 후 현장서 사라져
이후 SNS 영상으로 선행 퍼져 "어려운 사람 도우며 살아가고 싶다"
(고창=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그날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유동운(36)씨는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물류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배차 유리창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월 17일 오후 7시 17분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 사이로 붉은빛이 번쩍였다.
유씨는 차를 멈추고 빛이 비친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화재였다.
논두렁에 처박힌 BMW 승용차 안에서 새빨간 불길이 일렁였다.
누군가 애타게 누르는 경적이 빗줄기를 뚫고 택배차 안까지 들려왔다.
'저 안에 사람이 있다'
뇌리를 스치는 순간 유씨는 차에서 내려 불길이 치솟는 논두렁을 향해 내달렸다.
유씨는 달궈진 차량 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몸부림치던 김모(36)씨를 가까스로 밖으로 꺼냈다.
이 상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블랙박스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보면 유씨는 차량 문을 열고 두 손으로 온 힘을 다해 김씨를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자칫 차량이 폭발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유씨는 잠시도 주저함이 없었다.
유씨는 김씨를 차량에서 멀리 대피시킨 후 두려움에 떨던 김씨를 자신의 근무복으로 감싸며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하자, 김씨를 인계한 유씨는 다시 택배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이후 유씨의 선행이 담긴 이 영상은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했다.
누리꾼들은 '불길에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한 대단한 택배기사', '각박한 세상에 아직 저런 분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다', '추운 날씨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전북 고창군과 고창소방서는 유씨를 수소문해 표창을 수여했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유씨는 평소에도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하고 마을과 지역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군민의 자긍심을 높인 유씨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칭찬행렬은 계속됐다.
LG 복지재단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의미가 담긴 LG 의인상을 유씨에게 수여했다.
박근태 CJ대한통운 사장과 손관수 대표이사 등 경영진도 유씨에게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고 그의 선행을 칭찬했다.
유씨는 지금도 그때가 생생히 떠오른다며 기억을 되뇌었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불타는 차 안에서 경적이 들렸다. 누군가 차 안에서 애타게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우선 사람 부터 구해놓고 보자는 생각해서 바로 차로 뛰어들었던 것"이라고 당시의 심경을 들려줬다.
유씨는 최근 김씨로부터 '정말 고맙다. 같이 밥을 먹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는 소식도 전했다.
유씨는 "사실 지금도 얼떨떨하다. 이렇게까지 칭찬 받을 일을 했나 싶을 정도로 과분한 상을 받았다.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전화기 너머로 수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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