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진상규명' 원해…400일 넘는 농성에도 특별법 7년째 계류 중
피해조사·관련자 처벌·재산환수 시급…"국가폭력, 정부가 해결해야"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김선호 기자 = "부랑인을 보호한다던 형제복지원은 멀쩡한 사람을 끌고 가 정신이상자로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몸과 정신이 망가진 입소자들은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뒤 진짜 부랑인이 돼 거리를 전전하다가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또 다른 시설에 갇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40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여온 한종선(43)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표.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잡아갔고, 왜 형제복지원에서 당한 악몽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지 국가에 묻고 싶어 한다"고 25일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지난해 사망)이 피해자들에게 가한 특수감금죄를 무죄로 판단한 1989년 판결을 다시 심판해 달라며 대법원에 비상상고 신청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비상상고가 이유 있다고 판단해 옛 판결을 파기할 수 있지만, 무죄 효력은 바뀌지는 않는다.
◇ 피해자들 "진상규명법 제정해달라"
문무일 검찰총장은 피해자들을 만나 머리 숙여 사과하고,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같이 눈물을 흘렸지만 한 대표는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특별법 통과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다시 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진척이 없어 7년째 국회를 떠돌고 있다.
피해자들은 특별법 통과와 함께 형제복지원 관련자에 대한 처벌과 입소자 희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박인근 원장 일가 재산환수, 피해생존자 아픔과 상처 치유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실태 파악조차 안 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사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좀 더 빨리 공론화되지 못한 것은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가 너무 컸던 탓도 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수용인원은 3천여 명이다.
1970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된 형제복지원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보낸 원생들은 대략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현재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와 연락이 닿는 피해자는 270명 정도다.
하루에도 몇번씩 악몽 같았던 형제복지원 트라우마에 허덕이며 극도의 공포감에 빠지기 일쑤라는 것이 생존자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수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등 빈민층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 250여명은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지 30년 넘도록 중증장애인시설, 정신요양시설,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대책위가 자체 파악한 것으로, 타 시설 수용자까지 고려하면 피해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 출신 시설 수용자들은 지금도 자유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 "전수조사, 치료와 지원 시급하다"
대책위가 파악한 피해자 수는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하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이 드러났지만 이후 정부는 오히려 치부를 덮기에 급급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 아픔과 트라우마는 더욱 깊어졌다.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와 별개로 형제복지원 피해자 전수조사와 정신적, 신체적 치료와 지원이 시급한 이유라고 대책위는 지적했다.
여준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너무 오랫동안 피해생존자들이 방치됐고 후유증에 상당수는 이미 사망했다"며 "국가나 부산시 차원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최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사죄한 부산시에 피해자 실태조사를 제안한 상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산시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에 나섰다.
시는 26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신고센터를 연다
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 밖으로 나와 가슴 속에 묻었던 억울함을 신고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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