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사라진 이용원 살인·방화범, 형사 눈썰미로 검거

입력 2018-12-24 14:49   수정 2018-12-25 10:34

'오리무중' 사라진 이용원 살인·방화범, 형사 눈썰미로 검거
20대 범인, 한 달 전 차량 절도 당시 옷차림 그대로 범행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너 어제 뭐 했어…이용원에서 사람 죽였지?"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형사의 한마디에 20대 범인은 부인할 생각도 못 하고 "네 제가 그랬습니다"고 자백했다.
지난 23일 0시 57분께 광주 북구의 한 건물 지하 이용원에서 불이 났다.
10분여 만에 불이 꺼진 이용원 안에서는 60대 여성 업주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입속에는 카드전표 2매와 소형 제습제(실리카젤)가 들어있었다.
시신에는 목을 졸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입안에는 연기를 흡입한 흔적이 없어 타살이 분명해 보였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불이 날 당시 함께 있던 종업원이 가게에서 연기가 치솟은 직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한 남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용원 후문을 빠져나오는 CCTV 장면을 확인한 경찰은 즉각 종업원부터 찾아 나섰다.
이 종업원은 범인에게 협박당하는 과정에서 팔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경찰은 불안해하는 종업원을 차분히 설득하며 사건 내용을 하나씩 복기했다.
퇴폐 영업을 하는 이용원에 한 남성이 들어온 것은 지난 22일 오후 9시께였다.
동짓날을 맞아 동지 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서 TV에서 즐겨보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는 종업원의 기억을 토대로 시간을 특정했다.
술에 취해 들어온 이 남성은 다음날 0시께까지 이용원 내부에 머물다 업주와 싸움을 벌였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했으나, 업주가 거절하자 업주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는 침대 밑에 쓰러진 업주 몸 위로 이불과 옷가지를 덮고 휴대용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연기가 치솟는 이용원에서 CCTV 본체까지 뜯어 나온 이 남성은 종업원을 위협하며 밖으로 끌고 나와 종업원의 신분증을 빼앗았다.
"신고하면 찾아가서 죽이겠다."
범인은 이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용의자의 신원조차 모르는 경찰은 즉각 도주로를 역추적했다.
꼬박 하루 동안 도주로를 뒤쫓아 갔지만, 이 남성의 행방은 광주 북구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은 이 골목 안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수십여채의 주택을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찍힌 비교적 선명한 CCTV 화면이 확보됐다.
그때 한 경찰관이 이 용의자를 기억해 냈다.
CCTV의 용의자는 한 달여 년 전 만취해 문이 잠기지 않은 채 주차된 다른 사람의 차량을 제멋대로 몰다 5m도 못가 사고를 내 조사를 받았던 서 모(28) 씨와 인상착의가 흡사했다.
용의자의 옷차림이 서씨가 사건 조사 당시 입었던 것과 똑같다는 것을 담당 형사가 알아본 것이다.
서 씨의 주소지를 확인해보니 실제로 그의 집이 이 골목길에 있었다.
날이 밝길 기다린 경찰은 서 씨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눈을 비비고 나오는 서 씨를 상대로 곧바로 범행 여부를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
조사결과 서 씨는 이용원 업주가 환불 요구에 응해 주지 않자 화가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 씨는 성폭행, 강도 등 수건의 전과가 있었다.
경찰은 "형사들이 발품을 팔아 범인의 신원이 정확히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교적 빨리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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