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등 위험의 외주화 중단 촉구 확산…정부 "원청 책임져야"

입력 2018-12-25 06:01   수정 2018-12-25 13:29

발전소 등 위험의 외주화 중단 촉구 확산…정부 "원청 책임져야"
발전소 정규직화 갈 길 멀어…전문가 "원청업체 책임 강화돼야"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홀로 밤샘 근무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공공기관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특히 화력·원자력 발전업무를 담당하는 발전공기업은 최근 5년간 내부인력보다 외부인력을 더 빠른 속도로 늘린 가운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속도도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정책이 민영화·외주화로 향했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선뜻 총대를 멜 주체가 없는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무 부처가 오히려 정규직화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는 최근 발생한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을 약속한 가운데, 법적인 책임과 별도로 행정적 책임은 원청업체가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전 관련 전문가들은 원청업체가 책임져야 할 위험업무는 다시 인소싱해야 한다며, 원청업체의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발전소 정규직화 난망…"총대 멜 주체 없다"


25일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실적을 보면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공기업의 파견·용역 근로자 9천565명 중 지난 8월 말 기준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0.3%인 28명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전체 공공기관 파견·용역 근로자 총인원 10만4천222명 중 전환이 완료된 근로자가 13.9%인 1만4천511명에 달한 것에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이들 6개 발전공기업은 최근 5년간 내부인력보다 외부인력을 더 빠른 속도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35개 공기업의 외부인력 비율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발전공기업들의 정규직화가 더딘 이유로 총대를 멜 주체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발전부문이 정규직화 논의는 계속됐는데, 정규직화가 실제로는 잘 안됐다"면서 "사고가 난 곳은 석탄 쪽 연료 운전인데, 역시 정규직화 대상으로 논의하다 잘 안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부터 정부가 에너지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추진하면서 정비, 사업, 연료 운전의 외주화를 확대하고, 민간에 사업을 넘겼다. 그에 앞서 2002년에는 발전소를 민영화하려다 못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같이 정부 정책으로 민영화나 외주화를 했다가 다시 정규직화하면서 인소싱을 하려다 보니 정책적 충돌이나 기관 간 충돌이 있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공기업 노사가 결정하라고 하고, 발전공기업은 그간 우리가 결정한 것이 없다고 서로 결정을 미루며 선뜻 총대를 못 메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화를 하는 게 기술 수준에 있어서도 좋고 근로자와 현장 담당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면서 "위험을 줄이고 원칙대로 하는 게 당장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더 안정적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외주를 줄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승재 한국서부발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가 인건비 재원을 안 줘서 외주를 줄일 방법이 없다"면서 "현재 산업부 논리로는 발전공기업의 경우 폐기되는 발전소가 생길 거니까 지금 인력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고, 기재부는 정원을 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정부 "원칙적으로 원청업체 책임"…전문가 "원청업체 책임 강화돼야"


공공기관 안전관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는 최근 발생한 사고에 대해 사고원인과 책임소재를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원칙적으로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은 원청업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적인 책임은 가려야 하지만, 외주나 민간위탁을 했으면 원청업체가 행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하청업체의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라영재 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가장 최상위에 있는 발주업체는 직접적 책임이 없어도 포괄적 감독책임이 있다"면서 "발주업체는 안전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공유하고 감독권한을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적 추세가 최상위 원청업체들이 안전·환경 관련 최종적 감독책임을 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 "한국은 고도성장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안전문제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각심을 갖고 포괄적인 책임을 지는 게 선진국의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주업체나 자회사 문제는 공공기관만의 문제는 아니고, 민간업체는 더욱 심하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민간업체들의 산업재해 문제 등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원청업체가 책임져야 할 위험업무는 다시 인소싱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원·하청 관계에서 사업주들이 원청에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만큼, 적정하게 하청대금을 줘야 하는 쪽에서 안전 장구 비용까지 적절히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의 책임에 대해 조금 더 비판해야 한다"면서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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