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북한 일상품 1만점 모은 英 보너감독 소장품, 대학로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강보에 싼 아기를 소중히 안은 여성과 뒤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남성. 1982년 6월 영국 왕세자 부부의 득남 소식은 북한에도 전해졌고, 왕세자 부부 사진을 넣은 '조선우표'가 한정판으로 나왔다.
36년 전 도안임에도 디자인은 꽤 멋스럽다. 연둣빛 색감도 산뜻하다. 북한 물건을 대할 때 내심 생겨나는 '촌스럽다'는 편견을 무색하게 한다.
2종의 우표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제3전시실에서 개막한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전시 출품작 중 하나다.
전시는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 연출로 국내에도 알려진 영국인 니컬러스 보너의 소장품을 통해 북한 그래픽디자인을 소개하는 자리다.
보너는 북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고려투어 대표이기도 하다. 1993년 처음 방북한 보너는 25년간 북한을 드나들면서 1만여점에 이르는 현지 물건들을 알뜰살뜰 모았다.
서커스 관람권부터 렌티큘라 엽서, 만화책, 포스터, 사탕 포장지, 통조림 라벨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200여점의 출품작은 그래픽디자인을 비롯한 북한 시각문화를 보여준다. 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북한인 일상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자립 경제를 주창한 북한은 많은 제품을 스스로 만들고, 디자인했다. 이들 제품에서는 북한의 고유한 상징과 모티브를 읽을 수 있다.
'더 많은 고기와 젖을 생산하자' '고치풍년을 마련하자' 등 갖가지 구호를 담은 선전화들도 선명한 색감과 독특한 구도로 눈길을 끈다. 이들 선전화는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다.
전시를 공동 주최한 기획사 컬쳐앤아이리더스는 "북한 선전화는 공산권 국가들의 프로파간다 적인 디자인 포맷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북한의 고유 언어와 색감으로 구성한 창작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전시는 올 초 영국 런던의 갤러리 하우스오브일러스트레이션에서 먼저 열린 전시를 재현했다.
다음 달 초 방한하려다 개인 사정으로 연기한 보너는 국내 기획사를 통해 "이 컬렉션은 북한의 가장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아름다운 그래픽들을 바탕으로 하는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교한 작품도 있지만, 다른 기본 디자인들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라면서 "미니멀한 단순함이 리듬감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4월 7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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