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위로받기 - 시로'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기 때문이야.'(255쪽)
제목도 없고, 일반적인 '시'의 형태에서도 조금 벗어나 있지만 울림과 감동만큼은 여느 시 못지않게 명확하다.
재치 넘치고 공감 가는 시들로 사랑받는 하상욱 작가의 새 시집 '어설픈 위로받기 - 시로'(위즈덤하우스)가 출간됐다.
3년 전 '시 읽는 밤: 시밤'이 사랑시로 채웠다면 '시로'는 사람에 시달리고, 직장에 치이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뼈 때리는' 위로를 선사한다.
하 작가는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위로가 필요한 시대지만, 보듬어주거나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비슷한 다른 이의 삶을 보면서 '짠하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느낌을 독자들이 받았으면 한다"고 한다.
'시로'에 실린 시들은 쉽다. 몇 글자 되지 않아 휘리릭 읽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페이지도 더러 나온다.
'나는 회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회사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24쪽)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싶었다. // "뭐 하냐"고 묻던 친구가 / "잘 사냐"고 연락했을 때.'(136쪽)
'"괜찮아 힘내"보다 "괜찮아 울어"가 더 힘이 될 때가 많다는 걸 갈수록 느낀다. // 너무 힘내다가 지쳐서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누가 힘내라고 하면 마음은 고맙지만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더라. // 부끄럽게도.'(248쪽)
하 작가는 "힘든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힘들면 안 되니 힘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힘들어하는 것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를 써내려 갔다"고 말했다.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만 / 나는 지나기 전이라서요'(257쪽)
책 뒷표지에 적힌 이 시편은 '시로'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은 작품이다.
아픔을 봤을 때 보듬어주기보다 그 자체로 봐주는 것이 공감이고 위로라는 하 작가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시로'에 실린 시편들은 독자들을 위한 것인 만큼 하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처음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시를 올리면서 하 작가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한편으로는 작품들이 문학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며 "하지만 내가 쓰는 작품을 분명히 '시'라고 생각하고, 시라는 장르는 충분히 그만큼 열려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 시가 문학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대중시'로 봐주셨으면 한다"며 "내 시들도 나름의 영역이 있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분들을 위해 글을 쓸 뿐이고, 좋고 나쁘고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각종 편견과 비판 속에서도 하 작가는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나 자신에게 좀 관대할게요. // 나 아니면 누가 그러겠어요.'(82∼83쪽)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자긍심? 그런 건 없어요. 오히려 더 겸손하고 조심하려 노력하고 있죠. 다만 좀 더 내게, 내 글에, 내 영역에 관대해지려고 노력은 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영역 또한 비판하거나 부정, 혹은 침범하려 하지 않고 관대해지려 하죠."
하 작가는 최근 밴드 10㎝의 권정열과 작업한 '다 정한 이별'을 세상에 선보였다.
'시밤'의 시편들을 가사로 한 이 노래는 하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글의 형태이자 그가 꼽은 가장 뛰어난 완성품이다.
그는 "내 글을 완성 짓는 것은 노래"라며 "내가 쓰는 글들이 노래가 돼서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것, 그게 내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다"고 뭉클해했다.
'시로'에 담긴 시편들로 만든 새로운 노래도 현재 작업 중으로, 내년에 발매될 예정이다.
끝으로 하 작가는 "나는 비판해도 내 책의 독자들은 비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혹시라도 하상욱의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누가 비판한다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트렌드를 따르는 거라고 자랑스러워하실 필요도 없고요. 독서는 자신의 취향이죠. 대단한 독자가 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책 그 자체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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