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진보-보수 양대 정파 구도가 안정적으로 정립된 미국에서 대학 학계, 특히 순수 학문 분야는 오래전부터 '리버럴'이 장악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예술계, 뉴욕타임스, CNN 등을 위시한 언론계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 우파가 지난 대선 구도를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리버럴과 전쟁'으로 보고 동성애, 근본주의 페미니즘, 불법 이민, 이슬람 등과 각을 세운 것도, 이런 방식의 선명한 갈라치기 전략이 아니라면 또 한 번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버럴(liberal)은 유럽에서 태동한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학문적으로는 오히려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이고 '좌파'로도 불린다.
미국 내 리버럴은 마르크시즘을 신봉하고 '힘의 외교'를 '전쟁광'으로 규정해 비판하며,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를 옹호한다.
정파적으로는 민주당의 절대적 지지자이다. 리버럴이 지배하는 학계와 언론이 연합해서 내는 목소리가 미국 민주당을 떠받치는 가장 큰 힘이다.
최근 미 우파 진영에서 차세대 논객으로 떠오른 벤 샤피로는 저서 '세뇌(Brain Washed)'에서 이런 구도를 일찌감치 읽어낸다. 이 책이 출간된 2004년 샤피로는 대학을 막 졸업한 약관에 불과했던 만큼, 미국 우파 진영의 향후 생존 논리를 제공할 유망주로 당시 주목받았다.
이 책은 당시 학교에 다니던 대학생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생생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욱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대학생, 특히 문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왜 골수 리버럴이 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미국에선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학교수 비율이 쿠바 정부 내 공산주의자 비율과 비슷하다는 조크가 있다. 책에 따르면 2000년 대선에서 아이비리그 인문·자연대 교수 84%가 민주당 앨 고어를 찍었고, 공화당 조지 W. 부시에게 표를 던진 교수는 9%에 그쳤다.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대학교수들은 부시를 "바보 같고 무식하다"고 조롱하며, 당선을 불법으로 규정해 민주당에 '대선 불복' 근거를 제공한 건 잘 알려진 역사다. 심지어 부시를 찍은 유권자들에게도 '비윤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공화당 지지자임을 밝히는 일을 두렵게 만들었다.
지혜의 전당에서 학문적 상대성이나 객관성은 자취를 감췄다. 미국 대학에서 자신이 우파 또는 보수라고 털어놓는 것은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성향 교수들은 동료나 대학 경영진으로부터 공격이 두려워 보수임을 감춘다. 공개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동료들로부터 "어린이 성추행범이라도 된 듯한" 따가운 시선을 받아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특정 정치성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농후하다. 책에 따르면 2001년 한 조사에서 4년제 대학 신입생 정치성향은 좌파가 약 30%, 우파가 약 20%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2000년 대선에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학생들은 71%가 앨 고어를 찍었고 20%만 부시를 지지했다.
진보 성향 교수들은 보수주의는 "극우", 공화당은 "역사적으로 인권 정당인 적이 없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젊은 샤피로는 "그렇다면 링컨과 노예 해방도 모두 페이크 뉴스인가"라고 분개한다.
이밖에도 샤피로는 경제 불황, 부자 감세, 이윤, 시장경제 등에 대한 "편향된 대학 교육"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한다.
현재 34세인 샤피로는 데일리 와이어 편집장이면서 언론 감시 활동과 팟캐스트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2004년 20세에 UCLA 정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2007년 하버드 로스쿨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남규 옮김. 기파랑. 248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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