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톡톡] 군사정보협정까지 맺고도 '레이더갈등' 수습못하나

입력 2019-01-04 08:13  

[김귀근의 병영톡톡] 군사정보협정까지 맺고도 '레이더갈등' 수습못하나
軍 "초계기 위협했다는 주파수 공개해야" vs 日 "주파수는 기밀이라 못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따라 마음먹으면 Ⅱ급 이하 군사기밀 교환가능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우리 해군 함정이 지난달 20일 조난한 북한 어선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탐색레이더(MW08)를 가동한 것과 관련한 한일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맺고 '군사협력'을 약속한 두 나라가 그 정신을 되새겨 '공방'을 중지하고, 그 소모전의 늪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양측의 주장은 완전히 엇갈린다. 앞으로 좁혀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측은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P-1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 전자파를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일본 측은 화기관제 레이더 전자파가 초계기를 향해 몇 차례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됐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일본 초계기가 당시 광개토대왕함이 운용 중이던 탐색레이더의 전자파나 광개토대왕함과 함께 북한 선박 구조활동을 하던 우리 해경경비함 삼봉호의 '켈빈' 레이더 전자파를 추적레이더(STIR)로 오인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그간 일본 초계기가 당시 탐지했다는 레이더 주파수 특성이나 대역 등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 사건의 진실을 조기에 가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열린 방위성과의 실무급 화상회의에서 일본 측에 초계기가 탐지했다는 '화기관제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측은 이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방위성은 실무급 화상회의 다음날 초계기가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초계기 승무원들이 "화기관제 레이더가 탐지됐다"고 말하는 교신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결정적 증거인 레이더 주파수 특성 등에 관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측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 '스모킹 건'(확실한 증거)인 주파수 특성 등을 공개하면 객관적으로 어떤 레이더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 방위성 관리들은 자국 언론을 통해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는 기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지지(時事)통신은 지난달 29일 일본 방위성 간부가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는 기밀이라서 공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간부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자파를 수신했는지는 초계기의 능력에 관한 사항으로 공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적 잠수함 탐지 임무를 수행하는 초계기의 주파수 정보는 '기밀'이어서 섣불리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초계기 주파수 대역이 공개되면 적 잠수함이 회피할 수 있는 자료로 이용할 수도 있어서다.
정보 당국의 한 전문가는 5일 "한 국가가 운용하는 초계기 주파수 관련 정보는 핵심 기밀이어서 상대국에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쪽에선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못 주겠다'고 맞서는 등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본이 GSOMIA를 체결했을 때의 정신을 되짚어 볼 것을 주문한다. GSOMIA는 군사협정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일본과 이런 협정까지 체결한 것은 본격적인 군사협력 단계로의 길을 닦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일 양국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1월 GSOMIA를 체결했다. 작년 8월 양국은 이 협정을 연장했다.
협정 체결을 앞두고 반대 여론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양국이 파악한 정보를 상호 교환하겠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정보수집 위성 5기(1기는 예비)를 보유한 일본은 북한 핵과 미사일 시설, 잠수함기지 등의 위성 사진·영상정보를 확보하는 능력을 갖췄다. 탐지거리 1천㎞ 이상 지상 레이더 4기, 이지스함 6척, 조기경보기 17대도 북한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일본의 고급 정보자산이다.
한국은 고위급 탈북자나 북·중 접경지역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한 정보(휴민트·HUMINT)와 백두·금강 정찰기로 수집하는 감청·영상정보(시긴트·SIGINT) 면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
한일 양국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비교우위를 갖춘 만큼, GSOMIA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논리로 체결을 강행한 바 있다.
이 협정은 총 21개 조항에 걸쳐 교환할 비밀의 등급과 제공 방법, 보호 원칙, 정보 열람권자의 범위, 파기 방법, 분실 및 훼손 대책, 분쟁해결 원칙 등을 정하고 있다. 제4조에는 교환할 군사비밀정보의 등급이 정의돼 있다. 한국의 '군사 Ⅱ급 비밀'은 일본의 '극비·특정비밀'에, 한국의 '군사 Ⅲ급 비밀'은 일본의 '비(秘)'에 상응하도록 규정돼 있다.
우리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르면 군사 비밀은 누설시 국가안전보장에 끼치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Ⅰ∼Ⅲ급으로 나뉘는데 Ⅰ급은 '치명적인 위험', Ⅱ급은 '현저한 위험', Ⅲ급은 '상당한 위험'이다.
일본과는 Ⅱ급 이하의 군사비밀만 교환하게 되어 있다. 이런 원칙대로라면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를 한국에 제공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 관리들은 당시 광개토대왕함의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가 '록온'(무기 조준까지 한 상태)됐다고 흥분했다. 그런 위협을 받았다면 그 위협의 실체를 가릴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면서 따질 것은 따지는 게 순리이다. 일본이 한국을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되면 일본 방위성 또는 정부 관계자의 입회하에 보여주고 가져가면 된다. 우리 측 주파수 정보에 대해서도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고 공개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GSOMIA 목적이 북한 핵과 미사일에 관한 핵심 정보교환이어서 이를 이번 레이더 문제와 직접 연결짓는 것은 과한 해석일 수도 있다"면서도 "초계기 레이더 정보가 비밀이라서 제공할 수 없다는 일본 관리의 주장을 접하면서 이럴 거면 왜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군 전문가는 "아베 정권이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소재로 이번 레이더 건을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이번 레이더 건은 한일 양쪽의 입장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three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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