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사고 후 '청소년 제한' 강화…고3 안전교육 급조도
SNS에 불만 폭주…"안전사고 났다고 활동 막는 건 '청소년 혐오'"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미성년자인 A(19)씨(그는 "언론이 20세 미만에 대해 '군/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차별"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지난달 31일 새해 첫 해돋이를 보려고 친구 4명과 함께 강원도 속초의 바닷가를 찾았다가 겪었던 황당한 일을 최근 트위터에 올렸다. 이는 리트윗 1만6천회를 기록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A씨 일행은 해가 뜨는 새벽까지 찜질방에서 추위를 피할 계획이었다. 부모와 동행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심야(오후 10시 이후)에 찜질방을 이용하려면 부모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공중위생관리법 규정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동의서를 준비했지만, 찜질방 2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속초해수욕장 인근 B찜질방은 "보호자 동의서의 효력이 얼마 전부터 사라져서 청소년은 동의서를 가져와도 야간이용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는 A씨 일행에게 해당 찜질방 관계자는 "강릉 펜션사고 이후에 그렇게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C찜질방에도 문의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A씨 일행은 찜질방 이용을 포기하고 편의점과 24시간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점 등을 전전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속초시에 확인해본 결과 당국의 지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서울 은평구 대성고 학생들이 수능 후 현장학습체험을 하러 갔다가 보일러 가스 누출로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뒤 강원도 일부 찜질방이 과잉 대응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과잉 대응의 배경에 교육 당국이 강릉 펜션사고 후 '수능 이후 학생방치'가 사고 원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초점을 맞추고 청소년 활동에 대해 관리와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고가 나자마자 미리 준비라도 한 듯이 피해 당사자인 청소년을 옥죄는 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이틀 뒤인 지난달 20일 서울 지역 한 고교는 비상 연락망을 통해 3학년 학생들을 긴급 소집한 뒤 안전교육을 했다는 글도 트위터에 등장했다. 이날은 학교가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에게 체험학습 등을 하라며 등교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한 기간이었다.
이 학교 학생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도대체 고3들이 무슨 안전교육을 더 받아야 하는가. 숙박업주들에게 안전한 시설을 만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사고가 난 강릉 펜션에 투숙한 이들이 수능을 마친 고3 학생이 아닌 성인이었어도 불시의 가스 누출에 속수무책인 것은 마찬가지였을 텐데 고3 학생을 모아놓고 갑자기 안전교육을 한 것이 과연 합당한 대응이냐는 것이다.
수능 후 청소년 활동프로그램을 지원해온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사고 이후 민간 수련원 등에서 청소년 단체활동 문의가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현상의 배경엔 '청소년 혐오'가 존재한다고 청소년 인권운동 단체들은 말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하나의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특별한 관리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빚어지는 세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한 고교의 학생 비상소집에 대해 "일부 학교가 열심히 하려는 마음에서 비상 연락망을 돌려 안전교육을 한 것 같다"며 선을 그었다. 행정이나 교육 당국이 시키지 않아도 민간 업체나 일선 학교가 '알아서' 청소년 행동 규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준) 지음의 활동가 공현씨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이 당한 사고의 경우 유독 사고 자체의 원인보다 '부모나 교사의 감독하에 있지 않아서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면서 "이런 인식은 청소년의 독립적 사회 활동을 제약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찜질방 이용을 제지당한 A씨는 "이런 식의 대응이 청소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면서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논리인데 원래 부모동의서가 있으면 가능하던 찜질방 야간이용이 막혀 밖에서 밤을 새우는 바람에 더 위험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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