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한·영판 이미 공개…불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으로도 제작중
"일본이 사실 왜곡…전세계에 정확한 사실관계 지속 알릴 것"
실무협의통한 '봉합' 가능성 있지만 장소 놓고 신경전…네티즌들은 '댓글전쟁'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조난한 북한 선박 수색 과정에서 촉발된 한국과 일본의 '레이더 갈등'이 국제여론전으로 치닫고 있다.
국방부는 해상에서 인도적 구조 활동을 심각하게 위협한 일본의 부당한 행위를 국제적으로 알리고자 다국어로 영상을 제작해 국방부 공식 유튜브 계정에 지속해서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6일 "일본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영상을 방위성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려 국제적으로 잘못된 인식이 퍼질 수 있어 이를 바로 잡고자 한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8개 언어로 영상을 제작해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글과 영어 자막 영상에 대한 양국 네티즌들의 조회수 뿐 아니라 댓글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다 다국어 영상까지 게시되면 전 세계 네티즌들도 '댓글공방'에 가세할 것으로 보여 자칫 국제이슈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 국방부, 8개 언어로 영상 제작 = 국방부는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STIR)를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한글과 영어판 영상을 제작해 공개한 데 이어 일본어, 중국어 자막을 입힌 영상도 제작 중"이라며 "추가해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자막으로도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영상을 8개 언어로 만들어 일본의 부당한 처사를 국제적으로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광개토대왕함은 지난달 20일 동해 대화퇴어장 인근에서 북한 선박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탐색레이더(MW08)를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P-1 초계기가 저고도로 다가오자 이를 식별하고자 IFF(피아식별장치)와 광학추적장비(EOTS)를 일본 초계기 쪽으로 돌렸다. 이에 일본 측은 초계기를 향해 화기 관제 레이더를 몇 차례 조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4일 공개한 영상을 통해 "광개토대왕함은 정상적인 구조 활동 중이었으며 우리 군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추적레이더(STIR)를 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군이 제작 중인 다국어 영상에도 이런 입장이 강조된다.
여기에다 일본 초계기가 당시 광개토대왕함 500m 거리까지 접근하고, 150m 상공으로 위협 비행했다는 사실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국방부는 "당시 함정 승조원들이 소음과 진동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방부 영상 공개 이후 일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방위성은 지난 5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입장을 통해 "동영상 내용에 일본의 입장과는 다른 주장이 보인다"고 밝혔다.
방위성은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 구축함에서 해상자위대 소속 P-1 초계기에 대한 화기 관제 레이더 조사는 불측의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로, 이러한 사안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 한글 영상 147만회 돌파, '좋다 싫다' 댓글 엇갈려…네티즌 '댓글전쟁' = 국방부가 지난 4일 오후 2시 유튜브에 게재한 '일본은 인도주의적 구조작전 방해를 사과하고 사실 왜곡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6일 오전 현재 조회수 148만회를 돌파했다.
댓글도 4만8천개를 넘었다. 군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이틀 만에 이런 조회수를 올린 것도 기록으로 남게 됐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좋아요' 7만6천여회, '싫어요' 7만5천여회로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영상을 비판하는 일본어 댓글도 많아 양국 네티즌들이 '댓글 전쟁'을 펼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난 수준으로 볼 때 일본 우익세력들도 가담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래서 이번 레이더 문제로 양국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양국, 협의 필요성 인정…조만간 실무협의 통해 봉합 가능성도 = 한일 국방 당국은 이번 레이더 문제에 대한 협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국방부는 공개 영상을 통해 "일본은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실무협의를 통해 사실 확인 절차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국방 당국간 실무협의를 열어 따지자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도 "향후 한일 방위(국방) 당국간 필요한 협의를 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도 지난 4일 전화통화에서 국방당국간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에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만날지를 놓고는 물밑 신경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은 실무협의를 도쿄에서 하자는 입장이지만, 우리 측은 서울에서 조속히 만나자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 장소를 놓고도 '기 싸움'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측은 실무적 협의를 하자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마냥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아직 협의를 개시하자는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양측이 실무협의를 한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주장을 굽힐 가능성은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본은 이미 정치적 이슈화된 레이더 문제를 놓고 한국의 주장을 수용할 경우 아베 정권이 입을 정치적 타격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이번 레이더 문제는 어느 일방의 주장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양측이 봉합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한국 측을 설득했던 것과 달리 미측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에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대외협력국장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일본 측이 이번 레이더 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미국은 이번 사안을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에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three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