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칙한 게시·답변 관리에 '보여주기식 행정' 비판
서울·전남은 문턱 낮고 실무부서가 게시글로 답변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인천시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본떠 지난달 도입한 온라인 시민청원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주민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7일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3일 시청 홈페이지에 시민청원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등록된 청원이 30일간 3천명 이상 공감을 얻은 경우' 시장이나 시 고위 간부가 영상을 통해 직접 답변하기로 했다.
답변 기준인 3천명은 인천시 인구 300만명의 0.1%다.
시는 청원 사이트를 열면서 행정력 낭비와 불필요한 갈등 유발을 막기 위해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공무원 인사 관련 사항 등은 청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는 시의 '보여주기식 행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동원력을 가진 특정 신도시 주민들이 사이트를 적극 활용하는 반면, 원도심과 낙후지역의 정보소외 계층은 시장과 시정의 관심에서 더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사이트 개설 후 처음으로 공감수 3천명을 넘긴 청원은 인구 9만명이 밀집한 신시가지인 청라국제도시에서 나왔다.
주민들은 민간업체가 추진하는 청라 G시티 개발사업을 인천시의 부시장급(1급) 공무원인 경제자유구역청장이 특혜 소지 등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는 게 부당하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인천시가 애초 천명한 원칙과 달리 공무원 인사 관련 청원 글을 여과 없이 계속 게시하자 해당 청원은 사이트에 등록된 지 17일 만에 공감수 3천명을 넘겼다.
시의 무원칙한 행정은 곧바로 민민갈등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인구 13만명의 송도국제도시 주민 인터넷카페가 청라 주민 청원에 반발해 경제청장 퇴진 반대 청원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송도·청라·영종 3개 지구로 구성된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개발하는 경제청장이 중도 퇴진하면 개발사업의 연속성이 끊긴다는 주장이다.
송도와 청라 일부 주민은 이날 시청에서 새로운 주민단체인 인천경제자유구역 총연합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경제청장 임기 준수를 촉구하는 등 민민갈등이 커지고 있다.
7일 오후 현재 인천시 온라인 청원 게시글 중 공감수 상위 9건 가운데 경제청장 사퇴 찬반, G시티, 소각장 등 청라·송도 관련 청원이 8건이고 영종국제도시 관련이 1건이다.
구도심 활성화를 으뜸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박남춘 인천시장의 '소통' 노력이 신도심에 쏠리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경제자유구역인 청라-송도 주민 간 싸움이 확산하는 데 대해 다른 지역 인천시민은 물론 청라·송도 주민들도 인터넷카페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등 냉랭한 시선이 적지 않다.
인천시는 청원 사이트에 공감수를 늘리기 위해 13세 이하 자녀 명의까지 동원하는 등 과열 양상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그제야 청원 전산시스템을 보완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현재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온라인 청원을 도입한 시·도는 인천 이외에 서울과 전남이 있다.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한 서울시는 1천명 이상이 공감하면 시장이 아닌 실무부서에서 청원에 대한 답변글을 게시한다.
전남도 역시 500명 이상 공감 청원에 대해 도지사가 아니라 담당부서에서 실질적인 답변글을 내놓는다.
인천시 관계자는 "제도 시행 준비가 미흡해 경제청장 사퇴 요구 청원의 경우 13세 이하 어린이 120명이 청원 성립에 동참했지만 현재는 시스템을 보완해 14세 이상만 청원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 인사는 청원 대상 자체가 아니지만 박남춘 시장이 경제청장 인사에 관한 사항을 뺀 청라 주민이 궁금해하는 현안에 대해 영상 답변을 할 예정"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도 특정인 사법 처리나 입법 등 직접 소관하지 않는 사안을 묵살하지 않고 최소한의 답변은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m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