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바깥이라도 대법원서 발표하겠다"…'포토라인 피하기' 꼼수 지적
영장청구·기소 앞두고 시위성 퍼포먼스…'보수세력 결집' 노림수 해석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사상 처음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에서 대국민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10년 넘게 몸담은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11일 오전 9시께 대법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 소회 등을 발표한 후 검찰청사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전·현직 법관들이 대거 검찰 조사를 받고,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한 데 대해 당시 사법부 수장으로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7년 9월까지 오랜 기간 근무한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입장발표 장소는 아직 대법원과 조율이 안 된 상태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법원이 내부 기자회견을 허용하지 않으면 정문 밖에서라도 발표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고위 인사가 검찰 출석 직전 다른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회견 방식이 여타의 사건 피의자들과 비교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검찰 소환 때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히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서 발언하는 상징적 장면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으로부터 질문 서너 개를 받을 수 있지만, 검찰 포토라인으로 이동해서는 질문을 해도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입장문 발표 장소가 대법원이라는 점도 논란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를 앞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종의 '전관예우'를 요청하는 시위성 퍼포먼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법원 쪽에 '단결'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법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를 놓고 고법부장 이상 고위 법관들과 소장 판사들이 쪼개져 대립하는 와중에 친정을 찾아 발언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고 보는 보수적 성향의 법관들의 결집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수사의 물꼬를 터준 김명수 대법원장을 압박하려는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15일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
대법원이 경내 진입을 불허하고 담장 바깥에서 성명을 낭독할 경우 오히려 결집 효과가 극대화할 수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입장발표 계획을 언론에만 알렸을 뿐 실제 경내에서 입장발표가 가능한지 이날 오후까지 대법원과 어떤 협의도 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청사는 보안시설이어서 취재기자도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법원 건물 바깥도 마찬가지"라며 "전직 대법원장이고 워낙 특수한 경우라서 청사보안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있지만 막상 양 전 대법원장 쪽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입장발표 이후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은 뒤 바로 앞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차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출석 당일 서울중앙지검 주변에 집회가 다수 신고돼 있어 입장을 발표하고 검찰청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도 우려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조사실로 들어갈 때까지 안전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 출석에 준하는 보안 조처를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3월 이명박 대통령 조사 때에 준해 11일 청사 출입을 통제한다. 조사 당일에는 취재기자도 중앙지검 청사에 들어가지 못하며, 차량 출입 역시 전면 통제된다. 중앙지검 내 다른 수사 부서의 소환 조사 등도 최소화된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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