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오성윤·이춘백 감독 신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2011년 개봉해 220만명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쓴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진이 신작 '언더독'(제작 오돌또기)을 선보였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언더독'은 인간에게 버림받은 개 뭉치와 친구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이 작품을 공동 연출한 오성윤·이춘백 감독을 9일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 감독은 각본을 썼고, 이 감독은 캐릭터와 그림 등을 담당했다.
오 감독은 우연히 본 SBS TV '동물농장'의 한 장면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고 떠올렸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데 온몸에 지저분한 게 덕지덕지 붙어있고, 눈 한쪽은 일그러진 시추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나왔어요. 유기견 보호소 철장 속에 있었죠. 그때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들이 일정 기간 안에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 개들은 왜 저기까지 오게 됐을까, 한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개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시나리오도 유기견들이 보호소 탈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썼다가 2년간 많은 수정을 거친 끝에 지금의 스토리로 완성했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혔을 때, 한 상갓집에 갔어요. 그곳에서 고인이 평소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의 명언을 삶의 지론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낌이 왔죠. 버려진 개들이 본성을 되찾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우리 작품의 메시지와 맞닿아있는 것 같았어요." 오 감독은 그때 들은 명언을 뭉치와 짱아의 대사로 녹여냈다.
'언더독'은 애니메이션이지만 한국사회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주인에게 버려진 뭉치와 새 친구들의 아지트인 철거촌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아찔한 로드킬 현장, 철창에 갇힌 개들의 모습은 실사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 감독은 "사실주의 영화로서 애니메이션을 추구하다 보니 직설화법으로 시작했다"면서 "초반은 현실과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두 감독은 영화 배경은 2D로 그려 손맛과 따뜻한 정감을 살리고, 동물 캐릭터는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또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목소리 연기를 한 뒤 이를 토대로 그리는 방식을 택해 캐릭터 입 모양과 대사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뭉치는 도경수가, 들개 밤이는 박소담이 연기했다. 뭉치 캐릭터는 '양치는 개' 보더 콜리를 모델로 삼았다.
이춘백 감독은 "수많은 견종 사진을 붙여놓고 고민했다. 우리나라 영화의 주인공은 백구나 황구가 일반적인데, 좀 더 '포스'를 풍기는 개를 원했다"면서 "보더 콜리는 국내에서 많이 키우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그래도 주인공으로서 외모를 고려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들개 밤이는 상상으로 만들어낸 견종이다. 여성 히어로로서 카리스마를 갖춘 개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 털을 입혔고, '블랙 러시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극 중 뭉치 일행이 이상향으로 찾아 나선 곳은 뜻밖에도 비무장지대(DMZ)이다.
"인간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DMZ가 저절로 떠올랐죠. 시나리오를 썼던 7년 전만 해도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반감됐네요. 하하(오성윤 감독)"
이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8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시나리오 개발뿐만 아니라 투자 유치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언더독'의 순제작비는 33억원. 디즈니·픽사의 편당 제작비가 2천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새 발의 피'다.
오 감독은 "전작의 성공 이후 희망이 보였는데, 국산 애니메이션 시장은 의외로 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면서 "우리가 소박한 미를 추구하게 된 것도 결국 생존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으려고 창투사에 갔더니,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마당을 나온 암탉' 이외에 성공 사례가 없어서 투자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바로 그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었다고 말해도, 그 한편 만으로는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너무 서글펐죠."
연간 국내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은 100여편. 디즈니·픽사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작품이 가족 관객을 겨냥해 성수기 시장에 개봉한다면, 그 외 수입 애니메이션은 방학 시즌에 집중적으로 개봉된다. 한국 작품은 대부분 영유아 대상 TV 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해 극장판으로 나오는 정도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을 상당수 외국작품에 내주고 있는 셈이다.
두 감독은 "시장이 커지려면 결국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면서 "핵심은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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