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ICJ제소 변호사 선정 나서…징용배상 외교갈등 본격 쟁점화

입력 2019-01-10 11:14  

日, ICJ제소 변호사 선정 나서…징용배상 외교갈등 본격 쟁점화
단계별 공세로 국제여론전 의도…아베 지지세력 결집에도 활용
개헌 노린 의도적 '한국 때리기' 해석도…한일관계 악화일로
외교협의·ICJ 제소, 韓 불응하면 '무용지물'…日도 협의거부 전례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한일 청구권협정 상의 분쟁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를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을 비롯해 쟁점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청구권협정 제3조에 근거해 제3국의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청할 준비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단계별 대응을 추진,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자국 정부의 주장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해당 기업인 신일철주금에 대한 자산압류를 승인한 것과 관련, 원고 측이 언제 해당 자산의 현금화를 위한 매각 명령을 신청할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일본 측 외교 소식통은 원고 측이 매각명령을 신청하면 "빨라도 2~3개월, 길면 약 반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외무성 간부는 "한국 측의 대응을 기다린다는 자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지만, ICJ 제소도 고려 중인 일본은 이미 국제재판 전문 변호사 선정 등 실무적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 청구권협정에 근거한 협의와 ICJ 제소 등은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2011년에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을 때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응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이번 사안을 외교 문제화하는 것은 배상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주장을 국제사회에 강조해 여론전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의 지난달 20일 '레이더 가동 논란'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대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당에서 제기된 것도 이번 사안과 맞물려 있다.


지난 7일 열린 자민당의 관련 회의에선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와 방문 제한 등의 대응조치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10일 징용배상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가 "(원고 측이) 압류 자산을 현금화하는 사태 등도 상정해 관계 성청(省廳·부처)에서 대응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산케이는 대응조치와 관련,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여행 등으로 방일하는 한국인용 비자(사증) 부활(방안)이 부상하고 있는 것 외에도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귀국도 선택지에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의 협의요청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이 문제가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까지 주장했다.
징용배상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움직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여당은 지난달 국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대폭 수용하는 출입국 관리·난민 인정법(입관난민법) 개정안을 강행 통과시켰지만, 여당 일각에서도 사실상의 이민정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 영토분쟁이 있는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협상과 평화조약 체결을 추진 중이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 아베 총리로선 외교적 성과를 토대로 선거 승리를 이끄는 동시에 자신이 정치적 사명이라고 강조해온 개헌 추진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강조했으며 이틀 뒤 방송된 NHK 프로그램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압류신청에 대해 대응조치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9일 한국 법원의 압류 승인이 확인되자 정부간 협의를 요청했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을 목표로 극우 노선을 유지해 온 그는 2017년 5월 '평화 헌법'의 핵심 조항으로 불리는 9조의 1항(전쟁·무력행사 영구 포기)과 2항(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을 남겨두고 자위대 근거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구체적 개헌안을 제시했다.
개헌을 위해선 올해 상반기 중 주목할 만한 업적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하는 아베 총리가 '한국 때리기'로 지지율 반전을 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징용배상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선 일관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일본 내에서조차 제기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의 협의요청에 대해 "일본이 법적 조치에 나섰다는 점을 의미한다"면서도 "어디까지나 '한국의 국내 문제'라고 했던 일본 측의 예측은 빗나가고 완전히 외교 문제화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마이니치는 "(압류신청 허가는) 한국 당국의 판단"이라며 "한국의 국내문제에서 국제문제로 국면이 바뀌면 일본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외무성 간부의 주장을 전했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한국 당국'의 판단이라고 강변하는 일본 정부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내법 정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한 뒤 이번 사안으로 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일 정부의 협력관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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