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삼거리에선 '구속촉구' 집회…양 전 대법원장, '긴 하루' 보낼 듯
'42년 엘리트 법관'을 연수원 30기 후배인 검사가 신문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11일은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에게 무척 긴 하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개입하고 '법관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이날 오전 9시 30분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지금까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고위인사들은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오전 9시 자신이 대법관(6년)·대법원장(6년) 등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대법원에서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한 뒤 검찰 청사로 향하기로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이 대법원과 사전 조율 없이 기자회견 일정을 밝히면서 대법원 청사 내부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무산됐다. 그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회견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검찰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품어온 보수 법관들의 결집을 유도하고, 대법원을 배경에 둔 채 자신이 '사법부의 상징적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법원 앞 기자회견 뒤 검찰 포토라인에선 별도의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포토라인 패싱' 논란도 불거진 상태다.
'꼼수'인지 '승부수'인지를 떠나 그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은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이 회견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전국 법원 노조 간부들이 이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사건의 피해자들이 기습시위를 할 가능성도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양 전 대법원장은 승용차를 이용해 바로 맞은편 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하게 된다.
이날 법원 주변에는 2건의 집회가 신고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 출입구로 갈라지는 길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선 오전 8시부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연다.
서울중앙지검 서문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여온 애국문화협회 집회가 열린다. 양 전 대법원장을 태운 승용차는 구속촉구 집회를 피해 서문을 이용해 중앙지검으로 들어선다.
중앙지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 소환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양 전 대법원장을 예우하기로 했다. 전날 밤 10시부터 일반인은 물론 취재기자의 청사 출입이 전면 통제됐으며 차량 출입 또한 막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예고대로 검찰 포토라인을 '패싱'한다면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청사 꼭대기 층인 15층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다.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도 이곳에서 조사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신문을 담당하는 검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7개월간 이어온 중앙지검 특별수사부 부부장검사들이다.
사법연수원 2기인 그는 정확히 30기수 아래인 단성한·박주성(각 32기) 부부장검사 등과 조사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옆자리에서 검사 출신이자 윤석열 중앙지검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인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정숙 변호사가 양 전 대법원장을 변호한다.
1975년 11월 법관으로 임용돼 42년간 부산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판사'의 길을 걸은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팽팽한 수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시 자택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재판에 간섭하거나 특정 성향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조치는 결단코 하지 않았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에 개입했다는 점을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 등을 내밀며 그를 압박할 수 있다.
검찰은 자정을 넘기는 심야 조사를 지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방대하기에 여러 차례 조사가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이 '끝장 조사'를 원하거나 조서 검토 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자정이 넘어 검찰청사를 떠날 수도 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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