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갈등에 잔혹했던 408+426일 굴뚝농성…마침내 땅으로

입력 2019-01-11 09:14   수정 2019-01-11 12:25

불신·갈등에 잔혹했던 408+426일 굴뚝농성…마침내 땅으로
'해고자 복직' 요구 2014년 5월부터 굴뚝 올라…6차 협상끝 노사 합의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파인텍 노동자들의 2년여 기나긴 농성이 11일 노사의 극적인 교섭 타결로 마침내 일단락됐다.
이들의 '투쟁'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장기 굴뚝 농성과 6차에 걸친 지난한 교섭 등으로 이어진 것은 노사 양측의 갈등과 불신의 골이 워낙 깊었기 때문이다.

'426일 굴뚝농성' 파인텍 노사 극적 타결…마침내 땅으로 / 연합뉴스 (Yonhapnews)
◇ 오래된 갈등…깊은 불신
파인텍 노동자와 사측의 갈등의 뿌리를 보려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경북 구미의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408일간 농성한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지회장, 뒤이어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426일간 농성한 홍기탁 전 지회장·박준호 사무장 등 5명의 파인텍 노동자들은 모두 '한국합섬' 출신이다.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했는데 2010년 7월 새 인수자를 찾았다.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스타케미칼'이었다.
그러나 스타케미칼이 2011년에 당기순손실 156억원을 기록하고 2012년에도 당기순손실 160억원으로 적자를 내자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 공장을 매각하고 회사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소속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신청받았고 이를 거부한 20여명은 해고했다.
해고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를 구성하면서 긴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회사가 노조를 와해하려고 위장폐업을 한다고 주장했다.
문을 닫기 직전인 회사가 350억원대 부채를 상환해 지분을 90% 이상 확보한 점 등을 보면 경영상 위기에 따른 폐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었다.
또 399억원에 공장을 사들인 스타플렉스가 이 공장을 분할 매각하면 수백억원의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노조 측은 주장했다.
결국 당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소속이던 차씨가 2014년 5월27일 구미공단 스타케미칼의 45m 높이 굴뚝에 올랐다.
408일에 걸친 고공 농성 등의 결과로 스타플렉스는 당시까지 남아있던 해고자 11명을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새 회사인 '파인텍'을 만들어 여기에 해고 근로자를 고용하고 소송·고소·고발을 취하하며 단협을 체결한다는 내용이었다.




◇ 408일 굴뚝 농성 끝내고 기쁨의 눈물 흘렸지만
408일 만에 굴뚝에서 내려와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기 무섭게 차 지회장은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직전 병원에서 간단한 건강검진만 받았을 뿐이었다. 건조물 침입과 업무 방해죄가 적용됐다. 그나마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해 구속을 면했다.
간신히 일터로 돌아와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으나 충북 음성에 새로 설립된 '파인텍'은 껍데기뿐인 회사였다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생활터전을 구미에서 아산으로 옮겼지만 월급은 스타케미칼 시절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기숙사에서 식사는 하루 한 끼만 지급됐다. 동료들이 공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새 공장 가동 10개월 만에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파인텍의 장비도 처분하기 시작했다.
결국 홍기탁·박준호 씨가 2017년 11월12일 새벽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이곳이 열병합발전소인 줄도 몰랐지만 그저 굴뚝이 있고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실이 보이는 자리라 이곳을 택했다고 한다.
이들은 75m 폭 80㎝ 난간에서 생활했다. 농성자들은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힘든 폭 80㎝의 철제 통로에서 침낭과 방한복 그리고 핫팩에 의존한 채 칼바람을 견뎠다. 몸을 제대로 누울 공간이 없어 웅크린 채 잠을 잤다.
하루 2번 지상에서 간단한 식사와 식수를 공급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난 6일부터는 농성자들이 단식에 돌입하면서 이마저도 받지 않았다. 농성자들을 검진한 의사는 "메마른 나뭇가지와 같다"고 이들의 상태를 표현했다. 체중은 고작 50㎏ 정도에 불과했다.



◇ 사측 "노조 오면 회사 사라져" 맞섰으나 결국 합의
굴뚝농성 411일 만인 작년 12월27일 파인텍 노동자들은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와 처음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이후 5차례에 걸친 교섭이 진행됐지만 서로 입장차만 확인할 뿐이었다.
특히 이달 3일 열린 4차 교섭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3시간이나 이어졌지만, 결국 마지막은 고성과 파행이었다. 모처럼 합의점을 찾아가던 협상안도 폐기됐고 합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굴뚝 농성자들이 단식까지 시작하며 목숨 건 배수진을 쳤다.
회사 측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스타플렉스에 파인텍 노동자들을 고용할 여력은 있지만, 고용하지 않는다"고 밝혀 갈등이 격화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모회사 직접 고용, 김세권 대표의 파인텍 대표 취임 등 노조의 요구에 모두 '절대 불가' 방침을 밝히고 "파인텍 노조가 들어오면 스타플렉스마저 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노조는 김세권 대표의 책임을 합의 요건으로 내걸었고, 회사 측은 김세권 대표가 책임지는 안에는 절대 합의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11일 노사가 양보하면서 결코 맞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양측이 드디어 손을 맞잡았다.
408일에 426일. 총 834일, 2년 하고도 석 달이 넘는 기간의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