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실이 발각돼 미국에서 독일로 추방된 95세 노인이 사망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베스트팔렌주 일간지들은 10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야키프 팔리가 전날 요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팔리는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독일로 강제 추방됐지만 현지에서 기소되지 않은 채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혐의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독일 검찰의 결론이었다.
팔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 경비대원과 친위대원으로 활동한 전력을 숨기고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시에서 수십년 동안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과거는 1993년 미국 당국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결국 2003년에 시민권이 박탈됐고 이듬해에는 법원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다.
실제로 추방되기까지 이처럼 오랜 시일이 걸린 것은 독일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관계당사국들이 수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팔리는 옛 폴란드 지역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인이다.
이들 국가가 한사코 외면한 탓에 그는 뉴욕시 자택에 칩거하고 있었고 이에 항의하는 유대인들은 그의 집 앞에서 빈번하게 시위를 벌였다. "당신의 이웃은 나치"라는 것이 시위대의 단골 구호였다.
그가 미국에서 전범 혐의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범죄 자체가 미국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 데다 피해자가 미국인이 아니어서 사법관할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일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통해 결국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외교 교섭에 나섰던 리처드 그레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추방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미국에서 죽었더라면 많은 미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팔리는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국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2차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 땅에서 목재상과 농장, 독일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군대에서 복무한 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폴란드의 트라브니키 수용소의 무장 경비대원으로 활동하며 학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 미국 검찰의 판단이었다.
미국 검찰은 팔리가 폴란드 민간인들과 등을 상대로 잔학 행위를 저지른 부대와 강제노동수용소를 담당한 악명 높은 나치 친위부대에 배속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43년 트라브니키수용소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나치가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있던 6천명과 수만명의 다른 수용자들을 끌어모아 학살을 자행하고 있던 시절이다.
1993년 검찰 수사관들이 집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내가 진실을 말했다면 비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비자를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팔리는 뉴욕에서 건축 제도사로 일하다 은퇴한 뒤 여전히 조용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직 수용소 동료가 캐나다 당국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팔리는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자백한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미국 검찰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기록 조회를 요청하고, 이어 1993년에 수사관들을 그의 자택으로 보냈다. 그는 2001년 검찰 조사에서 수용소 경비대원과 나치 친위대원이었음을 자백하는 조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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