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차(茶)와 인생은 닮았다.
차를 우리려면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삶에서도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다도를 통해 인생과 성장을 논한다. 모리시타 노리코의 동명 에세이를 영화로 옮겼다.
1993년 대학생 노리코(구로키 하루 분)는 사촌 미치코(다베 미카코)를 따라 다케타 선생(키키 키린)의 다도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다도를 배우며 시간은 흐른다.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였던 노리코도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의 서로 다른 소리를 구별하는 등 다도에 적응해간다.
영화는 단순히 다도를 잘 하게 되는 노리코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치중하지 않는다. 흔들리고 고민하는 청춘 노리코의 삶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노리코는 취직하고 결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미치코를 보며 자신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그런데도 다도 수업에는 빠지지 않는다. 취직 시험을 보기 전날에도, 실연을 당한 날에도 노리코는 다도를 한다. 다도와 함께 한 수많은 시간과 계절의 흐름 속에서 노리코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다도는 어렵다. 걸음걸이, 걸음의 수, 찻잔 등 도구의 위치, 차수건 접는 법 등 지켜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여름의 다도를 배웠더니 또 완전히 다른 겨울의 다도가 있다.
다도를 외우려는 노리코에게 다케타는 "몸이 저절로 움직이도록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인생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 쉽지 않은 삶을 머리로 설계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온전한 자신이 된다.
이쯤에서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영화 제목도 마음에 와닿는다. 매일 같은 차와 손님이라고 해도 매번 같은 만남은 아니기 때문에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24년 동안의 계절을 섬세하게 표현한 화면도 이 메시지에 힘을 보탠다. 매년, 매 계절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다.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지만 관객을 스크린으로 빨아들이는 데는 분명 유려한 화면의 역할이 크다.
이 영화는 지난해 타계한 일본의 '국민 엄마' 키키 키린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꼰대'처럼 충고를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노리코에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는 다케타와 키키 키린이 겹쳐 보일 때면 먹먹함도 느껴진다.
큰 슬픔에 고통스러워하는 노리코를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는 다케타를 보고 있자면 이것이 키키 키린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구로키 하루도 극을 조용하지만, 힘있게 이끌고 간다. 국내 관객에게는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와 드라마 '중쇄를 찍자'로 얼굴을 알린 이 젊은 배우는 20대부터 40대까지 넓은 연령대를 소화한다.
영화의 형식이나 주제가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과 그 안에서 여성 주인공이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똑 닮아있다.
오는 17일 개봉. 동명의 에세이도 국내 출간됐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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