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곤란…다른 학자 연락해라"…대부분 손사래
"배철현 입장 곤란해지는 것 아니냐"…'그들만의 동료의식'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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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임화섭 오예진 김예나 기자 =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개역개정판 성경 창세기 18장 32절)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극심하게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계획을 들은 아브라함이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창세기 18:23)라며 하나님을 만류하자, 하나님은 도시 안에서 의로운 사람을 열 명만 찾을 수 있다면 도시를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약속한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지만, 부패한 집단 속에서도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파국은 막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인용되기도 하는 구절이다. 다만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의인 열 명이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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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현직이던 당시 표절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으려고 시도했다. 배 전 교수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배 전 교수를 옹호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검토 후에도 판단을 유보하는 쪽이든, 전문가로서 의견을 밝힐 '의인 열 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서 신학대학원장을 지내고 퇴임한 명예교수 A 씨는 연합뉴스 기자가 배 전 교수의 표절 의혹을 언급하자 "그분은 표절하고도 남는다. 전문가들이 그의 전문성을 별로 높게 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정작 표절 의혹 내용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는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거절했다.
서울 소재 모 신학대학의 B 교수는 배 전 교수 의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죄송하다. 내가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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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전 교수의 입장을 고려해 검증 요청을 거절하는 등 학자들 간 연대감으로 뭉친 '그들만의 동료의식'도 상당수 엿볼 수 있었다.
서울 소재 모 신학대학원의 C 교수는 "표절 문제가 중요하고 내가 구약 관련 연구를 하긴 해도 다른 학교 교수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며 "배 교수 글을 출간한 학회지의 담당위원에게 연락해 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경기도 소재 사립대의 D 교수는 "서울대는 윤리 규정이 엄격하니 (취재 당시 현직이던 배 전 교수가) 상당히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다른 학자를 소개했다.
충청권 모 사립대의 E 교수는 "좋은 일 같으면 도와줄 수 있지만 불미스러운 일이다 보니 맞다 틀리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기 애매할 것 같다.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이 교수들에게 "이름과 소속 등 신원이 드러날 만한 정보를 모두 숨기고 익명처리를 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결국 의견을 들을 수는 없었다.
연합뉴스는 한국구약학회 측에도 모 임원을 통해 자문을 부탁했다. 58년의 역사를 가진 구약학회는 국내 구약학자 대부분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대학원생을 제외한 교수나 연구원 등 학자 회원도 200명에 이른다. 그러나 학회 측은 검증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이 학회의 전·현직 임원 중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이력이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학회 차원에서 나서기가 어려우리라는 분석도 나왔다.
학회 임원인 F 교수는 "검증을 할 만한 권위 있는 분들이 다수 (표절 문제에) 걸려 있으니 (검증하면) 제 살 깎아 먹기가 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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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전 교수의 표절 의혹과 관련해 자료를 검토하고 자문에 응한 소수의 학자들도 실명을 밝히기는 거부했다. 보복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F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면담에서 배 전 교수의 저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명백한 표절"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실명 공개는 극구 거부했다.
F 교수는 과거 종교계 유명 인사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해당 단체에서 내 박사학위 논문을 다 뒤졌나보더라. 그 단체에서 학교에도 전화를 하는 등 그일로 내가 참 많은 어려움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실명 인터뷰를 하면) 서울대에서 우리 학교를 공격할 수도 있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20년간 신학을 연구해 온 연구원'으로만 신원을 밝혀 달라고 한 G 박사는 배 교수의 책에 대해 "'해제' 부분은 거의 뭉텅뭉텅 번역한 것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G 박사도 '익명'이라는 전제하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학계의 이런 행태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신학대학 교수 출신의 연구원 H 씨는 "공신력 있는 뉴스나 언론에 대해서는 (보도로 인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안면 있는 사람들은 (발언이) 어려울 것 같다"면서 "결국은 같은 영역 안에 있다 보니 서로 감싸기를 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충남지역 소재 신학대학의 I 교수는 "구약학 전공은 (학자) 수가 아주 적다 보니 개인적 친분관계 때문에 (의견표명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문제에 대해 익명 인터뷰를 한다고 했더니 지인이 '언론을 믿지 말라'는 취지의 염려까지 하더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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