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시리아 안전지대' 구상, 사실상 쿠르드 거점 점령안"

입력 2019-01-16 08:00  

"터키의 '시리아 안전지대' 구상, 사실상 쿠르드 거점 점령안"
터키 대통령 대변인 "안전지대, 터키군 배치해 터키가 통제할 것"
쿠르드 고위인사 "안전지대 가장한 점령안" 반발…시리아 정부도 비난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정부가 제시한 시리아 북부 국경 '안전지대' 구상은 시리아 북부 점령안에 가까운 형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에 쿠르드를 공격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폭 20마일 안전지대' 설치안을 제시한 지 이틀 만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군 철수 후 터키가 안전지대를 구축할 것"이라며 민첩하게 대응했다.
안전지대는 일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 사이에 충돌을 막고자 비무장 완충지대를 가리키지만, 15일(현지시간) 에르도안 대통령 등 터키 고위 인사들이 밝힌 계획은 터키와 시리아의 실질적 국경선을 시리아쪽으로 30여㎞ 밀어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 후 대통령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터키가 터키군과 정보요원을 배치해 시리아 북부 안전지대를 통제할 것이며, 그 과정에 지역 주민을 참여시킬 것"이라고 답변했다.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선이 약 950㎞인 점을 고려하면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서울특별시 면적의 50배에 해당하는 약 3만㎢(950㎞×32㎞)를 터키의 관할 아래 두겠다는 의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총 연설 후 취재진과 만나 "안전지대 폭은 32㎞보다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도 했다.


터키가 안전지대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구역에는, 현재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장악한 쿠르드 반(半)자치지역의 거점 도시인 코바니, 아인이사, 까미슐리 등이 들어있다.
터키의 계획대로 안전지대가 구축된다면 하사카를 제외한 시리아 북부 주요 쿠르드 도시가 모두 터키군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된다.
앞서 터키는 쿠르드 민병대를 상대로 하는 군사작전을 전개한다고 위협했지만, 미국의 반대에 부닥치자 '안전지대' 구축안으로 미국과 담판을 벌여 시리아 북부를 손에 넣으려는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터키가 공개한 계획이 미국과 교감의 산물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어젯밤(14일 밤)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적인 이해에 도달했다"고 평가했지만, 무엇에 관한 합의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터키는 시리아 북부를 장악하기 위해 외교전에도 시동을 걸었다.
미국과 구체적인 안전지대 계획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러시아의 동의를 받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달 23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터키가 시리아 북부 안전지대를 관리하는 대신 나머지 쿠르드 지역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이 통제력을 회복하는 선에서 러시아와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점쳐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을 향해선 "안전지대로 난민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터키의 계획대로 된다면 시리아 쿠르드는 자치권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쿠르드 반자치지역은 터키와 아사드 정권이 '나눠 갖게' 된다.


쿠르드 세력은 터키의 안전지대 계획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쿠르드 고위 인사 베드란 지야 쿠르드는 터키의 안전지대 구상이 '가장된 쿠르드 점령 계획'이라며 거부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지야 쿠르드는 유엔과 유엔군이 운영하는 안전지대라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도 터키를 비난했다고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이 보도했다.
시리아 외무부 소식통은 통신에 "터키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터키 정권이 (중략) 점령과 적대 언어로만 협상한다는 것을 다시금 드러냈다"고 성토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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