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지권 사회에서 불로소득 사회로 전락한 대한민국

입력 2019-01-17 09:57   수정 2019-01-17 11:26

평등지권 사회에서 불로소득 사회로 전락한 대한민국
전강수 교수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출간…"땅 아닌 땀이 대우받는 사회로!"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더는 낯설지 않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도 일상에서 익숙해졌다. 그만큼 부동산은 한국사회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땀 흘려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땅으로 잘사는 사회, 불로소득을 좇아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돼버렸다. 정치인, 건설업자, 유력자, 재벌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층까지 모두가 부동산으로 '대박'을 노린다.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최근 사회를 뒤흔든 최대의 유행어는 '똘똘한 한 채'였다. 엄청난 기세로 불어닥친 투기 광풍에 전국이 들썩였다. 특히 서울 지역, 그중에서도 강남의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평범한 시민과 국민들을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땜질식 응급처방에 가까워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난 27년간 한국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고 토지 정의를 전파해왔던 경제학자 전강수(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 경제사를 살펴본 저서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를 출간해 평등지권(平等地權) 사회에서 불로소득 지향 사회로 전락해버린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속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근본 철학부터 재정립하자며 문제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전 교수는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세계적 명저 '진보와 빈곤'의 저자이자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1839~1897)의 사상에 크게 영향받은 학자로서 기득권세력, 투기세력, 뉴라이트 사학자들의 논리에 맞서 시장을 시장답게,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먼저 토지제도를 정의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역설해왔다. 지금의 한국 경제가 심각한 불평등과 불안정, 저성장에 시달리는 근본 원인이 토지와 부동산을 잘못 다뤄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평등지권 사회를 실현한 대표적 국가였다. 일제가 정착시킨 식민지 지주제를 성공적으로 해체한 뒤 온 국민이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소농의 나라'로 변모한 것. 농지개혁이 지주제를 해체하고 자작농체제를 성립시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 소유 균등성을 실현했다. 공평한 고도성장의 길은 이 농지개혁으로 열렸다고 전 교수는 분석한다.
이랬던 대한민국을 누가, 언제, 어떤 연유로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부동산공화국'으로 추락시키고 말았을까?
저자는 평등지권 사회가 부동산공화국으로 추락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주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고 말한다. 토지 불로소득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대규모 도시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지가 폭등과 부동산 투기를 불러왔다는 것. 강남개발이 그 출발점이었다. 정치자금을 마련키 위해 직접 토지 투기까지 벌인 박정희 정권의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는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돼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하곤 했다.
전 교수는 "한국에서 평등지권 사회가 성립하고 후퇴한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례없는 고도성장, 부동산 투기, 기득권세력 형성, 불평등과 양극화, 경제위기 등이 모두 그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일부 정권이 부동산공화국 형성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이 토지공개념 제도를 도입하고, 김영삼 정권이 과표 현실화 정책을 추진한 게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두 정권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근본적 해소를 목표로 부동산공화국과 정면대결을 펴려 하지 않아 정책이 당초 계획보다 후퇴하거나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한국 정부 최초로 부동산공화국과 정면대결을 펼친 주인공은 노무현 정부였다. 김대중 정부는 계획만 세웠을 뿐 실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 위기 극복 이유로 부동산공화국 강화 정책으로 기울고 말았으나 노무현 정부는 획기적 부동산보유세 시행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적 취득을 차단함으로써 불평등 완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보유세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었다. 전 교수는 "두 보수 정권은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력화하고 노골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정책을 펴면서 국민에게 지대추구의 꿈을 심어주고 마음껏 부동산 투기에 나서도록 부채질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전 교수는 "유감스럽게도 촛불 정부의 소임을 다하려는 생각도, 노무현의 분투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라도 더 적극적으로 토지공개념 사상을 널리 알리고, 토지균등분배·토지공공임대제·토지가치세제 등의 방법으로 이전보다 진일보한 평등지권 사회를 구현키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 교수는 종부세가 지니는 한계도 지적하며 이를 보완키 위해 국토보유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국토보유세는 현행 보유세 제도의 근본 문제로 지적되는 용도별 차등 과세를 폐지하고 모든 토지를 인별 합산해서 누진 과세한다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물론 보유세 강화에 뒤따르는 조세저항에 대해선 기본소득과 결합하거나 국가재건 프로젝트의 시행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또 '특권이익이 있는 곳에 우선 과세한다'는 것을 조세제도의 제1원칙으로 수립해 실행하자고 제안한다. 국토보유세 도입 외에 도입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재벌·대기업 법인세 중과, 누진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상속세·증여세 최고세율 인상, 자연자원 이용료와 환경 오염세 정상화 등을 꼽는다.
저자가 펴낸 관련서로는 '토지의 경제학', '부동산 투기의 종말' 등이 있다.
여문책 펴냄. 304쪽. 1만7천800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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