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상품권깡'으로 비자금 조성해 정치자금 4억여원 '쪼개기 기부'
핵심 피의자 구속영장 검찰서 2차례 기각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국회의원들에 대한 KT의 '쪼개기 후원'을 수사한 경찰이 황창규 KT 회장 등 일부 전·현직 임원들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것으로 1년여간 수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황 회장 등 전·현직 임원 7명을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입건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KT 법인도 정치자금법상 양벌규정을 적용해 함께 입건 후 송치했다.
황 회장 등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속칭 '상품권깡'으로 비자금 11억여원을 조성, 이 가운데 4억3천790만원을 19·20대 국회의원과 총선 출마자 등 99명에게 불법 정치후원금으로 보낸 혐의를 받는다.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경찰은 KT가 1인당 국회의원 후원 한도(500만원)를 피해 후원금을 내고자 이처럼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한 것으로 봤다. 후원에 동원된 임직원은 모두 29명이었고,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일부 직원들은 가족이나 지인 명의까지 빌려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특정 업체의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규제법', SK브로드밴드-CJ헬로비전 합병, 황창규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여부, KT가 주요 주주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 관련 은행법 개정 등 국회가 관여하는 현안에서 KT가 자사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고자 후원금을 냈다고 판단했다.
다만 후원금을 낸 행위와 국회 논의 결과 사이에 대가성이 뚜렷이 입증되지는 않아 뇌물로 보기는 어려웠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앞서 작년 6월 황 회장 등 핵심 피의자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후원금을 받은 쪽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같은 해 9월 황 회장을 제외한 3명에 대해 영장을 재신청했지만, 검찰은 "일부 피의자는 혐의를 시인하고 일부는 부인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와 함께 후원금 수수자 99명 쪽 관계자들을 전수조사하라고 지휘하며 다시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황 회장 측은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 없다"는 취지로, 대관업무 담당 임원들은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와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황 회장이 후원금 지출을 보고받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후 후원금이 전달된 국회의원 등 99명의 보좌진과 회계책임자 등을 모두 조사했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불법 정치자금임을 알고도 받았다면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의원실 관계자들은 경찰에서 대부분 "후원금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KT 쪽 자금인 줄 몰랐고, 알았으면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의원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후원금을 KT에 반환하기도 했다.
경찰은 불법 후원금 수사는 마무리하되, 일부 의원실에서 KT에 지인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 등은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기업이나 단체 등의 이익을 위해 법망을 피해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치자금 후원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사항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보해 정치후원금 제도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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