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보물과 달리 50년 지난 건축물·유물 대상
내부 수리·용도 변경 가능해 활용도 높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관계된 인물과 재단이 2017년 3월 이후 무더기로 매입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 제718호다.
정부가 2001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면서 도입한 등록문화재 제도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녔지만,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하는 근대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가지정문화재는 통상 제작·형성된 지 100년이 넘은 유물과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등록문화재는 50년이 기준점이다.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등록문화재 등록 기준은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이 지난 것으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건축물이다. 또 50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유물도 등록이 가능하다.
등록문화재 제1호는 1920년대 후반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지은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이며, 제2호는 서울시교육청이 정독도서관으로 사용하는 1938년 건물 '서울 구 경기고등학교'다.
등록문화재는 문화재에 대한 종래의 통념과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제도로 평가된다. 등록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와 결정적으로 다른 사실은 보수와 활용이 용이하고, 심지어 철거까지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현 상태를 바꾸는 '현상변경'을 하려면 지자체장이나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리·정비는 물론 문화재 주변에 의자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을 때에도 허가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사적이니 명승이니 천연기념물이니 하는 '지정' 문화재는 모양을 바꾸는 절차가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에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원형 보존에 노력해야 한다"는 막연한 조항만 있을 뿐, 현상변경과 관련해서는 지자체장에게 '신고'하게 돼 있다.
건축물은 외관(지붕부 포함) 면적의 4분의 1 이상에 이르는 디자인, 색채, 재질, 재료를 바꾸는 행위와 이전·철거 행위에 대해서만 30일내에 지자체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내부 보수는 신고 의무가 없다.
다만 건폐율이나 용적률에 관한 특례 적용을 받았거나 국가 보조금을 지원받았다면 현상변경 시 문화재청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소유자가 국가나 지자체인 등록문화재도 현상변경 허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지 않은 등록문화재 건물 보유자는 외관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지 않는다면, 내부 보수는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를 매입해 예쁘게 수리한 뒤 식당이나 카페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제약이 많아 활용도가 떨어지며 투자가치가 낮아진다는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등록문화재는 건축주가 자유롭게 보수해 부동산 가치를 올린 뒤 판매할 수 있다. 다만 문화재 거래는 등록문화재뿐 아니라 국가지정문화재도 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의 이러한 특징 혹은 장점이 제도 도입 초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중구 을지로 옛 대한증권거래소와 충무로 스카라극장이 등록 예고 즈음해 건축주가 곧바로 철거해 버린 이유도 '문화재'라는 말이 주는 '억압성'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등록 문화재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나아가 이 제도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등록 문화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등록 문화재는 재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실제로 등록문화재 건축물 가격이 오른 사례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손 의원이 투기 의혹을 반박하며 내놓은 "문화재로 지정되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없다"는 해명은 등록문화재 특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거나, 비난을 회피하려는 주장으로 분석된다.
손 의원이 건물을 집중 매입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도입한 면(面) 단위 등록문화재로, 전통 한옥과 비교하면 내부 개조가 쉽다고 알려진 일본식 건축물이 밀집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도시재생과 연계해 2023년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5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예산 중 상당 부분은 등록문화재 구역 안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고 보수하는 데 사용된다.
문화재청도 이처럼 정부 예산이 대규모로 들어가고, 구역 내 건축물 활용도가 높다 보니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지가 상승을 우려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기자 간담회에서 "면 단위 문화재 등록과 연계한 도시재생으로 인해 땅값이 올라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작년 8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과 함께 문화재로 등록된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 주변에는 점(點) 단위로 등록된 문화재가 적지 않은데, 구도심 땅값이 완만하게 오르는 추세다.
한국감정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에 따르면 내항 역사문화공간과 인접한 장미동 필지 한 곳은 ㎡당 공시지가가 2013년 26만원에서 2018년 29만5천원으로 올랐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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