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쿠바 경제를 옥죌 조치를 저울질하고 있어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959년 공산 혁명 이후 쿠바 정부에 몰수된 자산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수단으로 마련된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일명 헬름스 버튼법)을 카드로 활용할 속셈을 드러낸 것이 발단이 됐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6년에 도입된 헬름스 버튼법은 몰수된 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취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 골자다.
다만 클린턴을 포함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의 동맹을 해치고 향후 쿠바를 상대로 데탕트(화해)를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해 핵심 조항인 제3조의 발동을 6개월을 주기로 계속 정지시키고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16일(현지 시간) 제3조의 발동을 종전의 6개월 대신 한 달 반 동안만 정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국익, 쿠바 민주화 촉진이라는 견지에서 제3조에 대한 신중한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쿠바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는 진영은 물론 쿠바 정부를 반대하는 진영도 45일의 검토 기간이 경과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와 거래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길을 열어둘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소송의 빗장을 푼다면 쿠바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스페인 기업, 쿠바의 항만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과 터키 기업들에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제3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쏟아진다면 4년째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외자 유치에도 고전하고 있는 쿠바 경제도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와 항공사들, 크루즈선사처럼 쿠바에서 거래하고 있는 주요 미국 기업들은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일부 외국 대기업을 위해 활동하는 마이애미의 변호사 페드로 프레이어는 헬름스 버튼법에서 합법적인 쿠바 여행과 연관된 사업체들을 예외로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쿠바 정부는 공산 혁명 직후 미국 기업과 시민,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던 쿠바인들로부터 대규모의 토지, 그리고 호텔과 사탕수수 농장, 항만. 공항 등을 몰수하고 국유화했다.
이들 자산의 대부분은 현재 쿠바 정부와 외국 기업들의 합작사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쿠바와의 사업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이 그 주류를 이룬다.
프레이어 변호사는 제3조의 발동을 정지시키지 않는 것은 헬름스 버튼법이 도입된 이후 쿠바 정부를 겨냥한 가장 강도 높은 압박이라고 풀이했다.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표를 접한 뒤 쿠바 봉쇄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협박이며 무책임한 적대행위"라고 비난했다.
미겔 디아즈 카넬 쿠바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국제법을 위반한 새로운 도발과 간섭, 위협, 괴롭힘을 단호히 배격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4년 오바마 행정부가 취한 데탕트에 대해 지금까지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쿠바 여행과 관련해 일부 법규를 강화하고 쿠바 문제와 관련한 성명의 강도를 높이고 있었지만 데탕트의 방향 자체는 손을 대지 않았다.
미국 기업들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쿠바 전문가 필 피터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예상대로 3조를 발동한다면 쿠바와의 교류를 제한하는 데서 쿠바 경제의 붕괴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셈이라고 논평했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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