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안팎 후배 판사가 운명 결정…양승태 불출석 가능성도 제기
대법원 근무 경력 없는 명재권·임민성 판사가 심사하나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 여부를 심사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어떤 판사가 맡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모두 5명의 영장전담 판사가 있다.
박범석(46·사법연수원 26기)·이언학(52·27기)·허경호(45·27기)·명재권(52·27기)·임민성(48·28기) 부장판사가 그들이다. 사법연수원 2기 출신인 양 전 대법원장과 25년 안팎의 차이가 나는 후배 법관들의 손에 구속 여부가 달린 것이다.
구속심사는 보통 영장전담판사 5명 중 무작위 전산 배당으로 선정된 1명이 맡는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누가 맡더라도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영장전담판사 5명 중 3명에게 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 이날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병대 전 대법관 등 수사 대상에 오른 법관들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사건을 법관 스스로 회피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이들 법관은 재배당 신청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언학 부장판사의 경우 지난달 전산 배당으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를 맡게 되자 과거 근무 인연을 이유로 재배당을 요구했다. 이 부장판사는 2009∼2010년 박 전 대법관이 서울고등법원 재판장으로 근무할 당시 배석판사였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 압수수색영장 등을 기각하기도 한 그는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이언학·박범석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허경호 부장판사는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일할 때 양 전 대법원장이 북부지원장이었다. 2014∼2015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배석판사 출신이기도 하다.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는 명재권·임민성 부장판사는 상대적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거리가 먼 편이다.
이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대거 기각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기 논란이 제기된 지난해 9월 이후 영장전담 재판부에 합류했다.
명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처음으로 '사법농단 의혹'의 몸통에 대한 강제수사를 가능케 한 인물이다. 검사 출신인 그는 1998년 수원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동부지검, 청주지검 등을 거친 뒤 2009년 수원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관으로 새 출발을 했다.
임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로는 유일하게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2002년 광주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수원지법, 서울고법, 대전지법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런 명·임 부장판사도 지난달 7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를 맡아선 기각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의 관여 정도나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명·임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을 경우 박·고 전 대법원 영장 심사 때와 같은 기준으로 증거가 다수 확보됐다는 점, 전직 대법원장이라 주거·직업이 일정하다는 점 등을 들어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달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심사는 명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구속심사는 임 부장판사가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어떤 판사가 심사를 맡든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기류가 흐른다.
양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도입된 1997년 제도로, 통상 직접 나와 구속수사의 불필요성을 항변하는 게 피의자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속영장 청구에 항의하거나 혐의를 다투지 않고 반성한다는 뜻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현실적으로 구속영장 발부를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재판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략 아래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다.
지난달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여부 결정도 관심사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영장 기각 이후 법원이 지적한 공모관계 소명에 대한 부분을 깊이 분석하고, 그 취지에 맞게 추가 수사를 통해 보완했다"며 "혐의의 중대성과 영장 기각 이후 추가 수사 내용, 추가로 규명된 새로운 범죄 혐의를 고려할 때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꺼번에 청구함으로써 법원으로선 결정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1일 또는 22일 열릴 가능성이 크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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