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발표·이벤트 없이 종료…외신 "간극 좁혀진 징후 없어"
로이터 "친서 교환" 보도…스톡홀름 실무협상서 '디테일의 싸움' 예고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발표할 게 없는 것인가 아니면 '전략적 침묵''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방미 중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18일(현지시간) '백악관 회동' 후에 당초 예상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 날짜·장소에 대한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2월 말께'라는 개략적 시간표가 윤곽을 드러냈지만, 구체적 날짜와 장소 발표는 '추후'로 미뤄졌다.
김 부위원장의 1차 방미 때인 지난해 6월 1일 이뤄졌던 1차 백악관 회동 직후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 발표하며 떠들썩한 장면을 연출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은 트윗 메시지도 공개 발언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2차 핵 담판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 관리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DC로 직행한 김 부위원장의 두 번째 '백악관 예방'이 중대 발표나 깜짝 이벤트 없이 '로우키'로 끝나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 부위원장의 이번 백악관 예방은 직접 담판에 앞선 북미 정상 간 '간접대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제재 갈등'이 북미교착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혀온 상황에서 백악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계획 발표 대신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 원칙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한 것이 주목된다. 이날 백악관 회동에서 북미 간 신경전이 재연, 양측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면담이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북미 대화를 계속할 것이고 대통령은 회담을 기대한다", "우리는 계속 진전하고 있고, 계속 대화하고 있다"고 긍정적 언급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볼 때까지 대북 압박과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당분간 제재유지 입장을 견지했다.
앞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부위원장의 면담 시작을 알리는 성명에서도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의 지속적 진전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FFVD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의 워싱턴DC 도착 불과 몇 시간 전 '2019년 미사일 방어 검토보고서'(MDR) 발표에 맞춰 "미국을 향해 발사되는 어떤 미사일도 반드시 탐지해 파괴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연장선상에서 김 부위원장과의 면담 직후에도 대북 압박성 발언을 동시에 이어간 것이다. 앞서 지난 16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재외공관장 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
이를 두고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선 '예비 담판' 성격의 이번 백악관 회동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 간 의제 조율에서 접점 찾기에 난항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거래'를 선호해온 북측이 이 자리에서 제재완화를 강하게 요구했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백악관 대변인이 제재 유지 입장을 못박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정상회담 발표에도 불구, 미국을 위협하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와 제재를 해제하라는 평양의 반복된 요구 사이에서 간극이 좁혀졌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백악관 면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날짜, 장소에 대해 김 위원장의 '선호 답안'이 전달될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정상회담 계획에 대한 확정 발표도 '추후'로 연기되면서 양측간에 일부 조정할 게 남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장소나 날짜 선정을 놓고도 양측간 힘겨루기가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날짜와 시간이 발표되지 않은 데 대해 "양측이 장소 또는 다른 실행계획(로지스틱스) 상의 세부사항을 놓고 여전히 실랑이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김 부위원장이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일찌감치 예고되면서 북미교착 국면의 실타래를 풀 '중대 결심' 여부 등 그 메시지에도 관심이 쏠렸으나, 이날 회동 후 친서에 대한 공개적 언급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행정부 고위 관료는 백악관 면담에서 정상 간 친서 교환이 이뤄졌다고 확인했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날의 '풍경'은 김 부위원장이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지난해 백악관을 예방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당시 뉴욕에서 육로로 이동한 김 부위원장이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TV 카메라를 통해 공개됐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과의 회동 후 건물 밖으로 나와 김 부위원장의 차량까지 그를 직접 배웅했다.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 기자회견을 방불케 하는 일문일답을 통해 6·12 정상회담 개최 방침을 확정 발표하면서 "빅딜이 있을 것", "회담은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또한 대화 도중에는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지 않겠다며 유화적 제스처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서도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을) 기대한다"는 언급을 내놨고, 김 부위원장과 친서를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초대형 봉투' 크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이번 국면에서 전례 없이 말을 아껴온 태도의 연장 선상에서 '전략적 신중 모드'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8일 예정됐던 뉴욕 북미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데 대한 학습효과 차원에서 유리그릇 다루듯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지난해 김 부위원장의 1차 백악관 방문 당시 미 조야내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시선도 있다.
정상회담 날짜·장소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비핵화 실행조치-상응 조치 간 조합 맞추기에서도 일정 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진 가운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발표 시점 등을 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 나온다.
이날 북미가 종일 '체급'을 바꿔가며 마라톤협상을 이어간 가운데 정상회담 세부조율을 위한 북미 실무협상 채널 가동이 예고된 것 자체가 '긍정적 신호'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무부는 이날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19∼22일 스웨덴 방문 일정을 발표했다.
북미 정상이 친서를 교환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양측의 '톱다운 소통'에 이상기류가 없다는 시그널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면담에서 양측의 친서 교환이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대로 실무협상이 본격화되면 이제부터 '디테일 싸움'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미 조야의 회의론도 미 협상팀에는 압박이 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외교 전문가들이 현 상황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에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요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2차 정상회담이 반드시 대단한 뉴스는 아닐 수 있다"며 "모든 건 얼마나 잘 준비할지, 어떤 대가를 주고받을지에 달려 있는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안심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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