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전 물포 위헌 소송 각하 결정에 진한 아쉬움
"후학들과 소통, 지역 현안에도 필요하면 목소리"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방(연구실)이 좋고, 경치도 좋아요. 숙소도 학교 안에 있고…."
헌법재판관 퇴임 후 전남대학교 강단에 서게 된 김이수 석좌교수를 만났다.
3∼4평 남짓 비좁은 면적에 아직 정리도 덜 된 듯한 연구실이었지만 창문 밖 풍경이 좋고, 볕도 잘 들어온다며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관 퇴임 후 11월부터는 전남대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그동안에는 강의가 없어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에서 1주일에 한 번 정도 광주에 내려와 강연이나 연구 활동을 해왔다.
광주는 김 교수가 중·고교 시절을 보낸 고향(전북 고창 출생)과 같은 곳이다.
새 학기부터는 강의를 통해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도 만난다.
41년 법관, 재판관 생활을 하며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등 격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세간의 관심이 덜했던 아쉬운 사건 이야기가 돌아왔다.
김 교수는 사건번호를 찾아 일러주며 이른바 물포 발사행위 위헌 확인 소송 경위를 설명했다.
2011년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 집회 참가자 일부는 경찰의 물포 발사로 고막천공, 뇌진탕 등을 입었다.
부상자들은 생명과 신체를 보전할 권리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물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발사행위 자체가 근거, 사용기준과 관련한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향해 쏘는 직사 살수는 금지돼야 한다고 청구인들은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관 9명 중 6명이 각하 결정을 하면서 소송은 본안 판단조차 받지 못하고 종결됐다.
재판관들은 물포 발사가 이미 이뤄져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심판청구가 인용된다 해도 청구인들에게는 실익이 없는 것으로 봤다.
재판관들은 또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위험이 없고, 설사 법령을 어긴 물포 발사가 이뤄졌다면 법원이 사실관계를 따져 위법 여부를 판단할 문제지 헌재가 헌법적으로 해명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이정미·서기석 당시 재판관과 함께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론 내렸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
"물포 운용지침에서 직사 살수(撒水)의 경우 물살 세기를 3천rpm(15bar) 이하로 살수하고,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도록 규정했지만, 근거리 직사 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 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직사 살수를 맞게 되면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넘어지는 과정에서 머리나 가슴에 맞을 수도 있어 가슴 아랫부분만 겨냥하도록 한다는 규정의 실효성 또한 의문이다."
소수의견은 불행히도 예언이 돼버렸다.
각하 결정이 나온 게 2014년 6월 26일, 백남기 농민이 집회 현장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게 2015년 11월 14일이었다.
김 교수는 "다른 결론이 나왔으면 백남기 사건은 안 났으리라 본다"며 "위헌 소송 당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 했는데 더 큰 일이 생겨버린 셈"이라고 아쉬워했다.
헌법재판관 재임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등 8건에 걸쳐 단독 소수의견을 냈던 김 교수에게 '소수의견'은 무슨 의미일까.
김 교수는 "이진성 (전) 재판관도 소수의견을 많이 썼다"고 웃으며 "소신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관의 소신은 편향적이어서는 안되고 국민, 법률 전문가, 재판 당사자 등 세 주체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 의견이 모두 옳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견을 낸 순간, 배경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현 상황에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도 담았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석좌교수로 활동계획에 대해 "헌법 재판을 하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판장이 뭘 다루는지, 법관의 자세나 법조 윤리를 대학사회에서 강의하고 내 방을 찾아오는 학생과도 이야기 하고 싶다"며 "후학들과 소통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의 어려운 현안에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법관의 자세, 법조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묻자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한 우려를 섞어 답했다.
그는 "위에서 이야기(부당한 지시)한다고 해서 (결론이나 결과가) 바뀌는 게 무서운 일이고,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해치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주로 밖에서 압력이 왔지만 이번에는 법원 내부의 압력이 문제가 됐다. 결국은 법관 스스로 독립을 단호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sangwon70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