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깊은 곳·빛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 악몽 조각가 = 2009년 등단한 박화영의 첫 소설집.
등단작인 '공터'는 동네 사람들이 버려진 공터에 쓰레기와 함께 감추고 싶은 비밀을 투기하면서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을 그렸다.
박화영은 '풍부한 스토리들과 장면 전환의 자연스러운 흐름'(신춘문예 심사평)을 무기로 남들과는 다른 기묘한 소설세계를 풍부하게 일궈왔다.
그의 소설에는 기묘하고 섬뜩하지만 생명력을 지니고 꿈틀거리는 공포가 곳곳에 도사린다.
'작가의 말'조차 남다른데, 그는 '작가의 말'을 쓰기 전 물을 마셨다가 콜레라에 걸려 죽은 무명 작가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의 소설을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시킨다.
문학동네. 296쪽. 1만3천원.
▲ 회복하는 가족 =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 모음집.
장애를 안고 태어난 큰아들 '히카리'와 치매에 빠진 장모 등과 수십 년 간 함께 살며 깨달은 회복과 재생, 치유와 공생의 깊은 의미를 담백하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풀어낸다.
뇌에 장애가 있는 히카리는 아기 때 어머니가 늘 들려준 클래식 음악에 반응을 보이며 어느덧 피아노 연주와 작곡을 익히기 이른다.
수많은 사람의 애정과 격려 속에 히카리는 음악가로 성장하고, 그가 작곡한 곡들은 베스트셀러 음반이 돼 연주회까지 열린다.
이 경이로운 이야기는 절망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주는 따뜻한 등불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 실린 스무편 에세이 사이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아내 오에 유카리가 그린 따뜻한 삽화 스물네컷이 어우러져 있다.
양억관 옮김. 걷는책. 280쪽. 1만4천800원.
▲ 고독 깊은 곳 = 2016년 SF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문학상 '휴고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하오징팡의 SF 소설집.
휴고상 수상작 '접는 도시'가 수록된 첫 책이다.
'접는 도시'는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난 '도시를 접는'다는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도시를 접어 지반을 뒤집으면 또 다른 도시가 나타나는데 1공간은 24시간을 온전히 누리지만 2공간과 3공간은 한 지반을 함께 사용해야 해 각 16시간, 8시간을 쓴다.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에 대한 은유로, 지금 우리 현실을 풍자한다.
하오징팡의 소설은 인물과 그들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회과학 기반의 소프트 SF다.
'고독 깊은 곳'은 하오징팡의 작품 색채를 잘 보여주는 소설집이자 그가 SF 작가로서 무르익어가는 지점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책이다.
강초아 옮김. 글항아리. 416쪽. 1만4천원.
▲ 빛 = 나오키상 수상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리이치와 그 친구들의 일상 속 크고 작은 모험담이 펼쳐지는 어른들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읽는 이의 공감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묘사, 미스터리 장르에서 먼저 진가를 인정받은 흡인력 있는 문체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사춘기의 문 앞에 선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일상과 비일상의 접점은 이윽고 복잡한 현실 문제로 이어지며 작지 않은 모험을 불러온다.
김은모 옮김. 문학동네. 428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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