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문제 공용컴퓨터 저장, 암호 없어…'총체적 허술' 암센터

입력 2019-01-23 11:28   수정 2019-01-23 12:19

출제문제 공용컴퓨터 저장, 암호 없어…'총체적 허술' 암센터
평소 모시던 상사가 출제위원…"알던 직원 도우려 유출했다"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국립암센터는 암을 치료하기 위한 예방, 연구, 진료 활동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약 1천300명이 근무하는 이 기관은 정년이 보장되고 처우도 준공무원 수준이라 업계에서는 선망의 직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채용 비리 사건으로 드러난 암센터의 채용 과정은 기관의 위상에 맞지 않게 놀라울 정도로 허술했다.
암센터 영상의학과 보건직 정규직에 채용되려면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2번의 면접을 거쳐야 한다. 이중 필기시험 성적은 면접 때까지 영향을 미쳐 중요하다.
필기시험은 초음파, MRI 등 5개 과목 총 50문항이 출제되는데, 이번에 문제를 유출해 구속된 3급 간부 A(44)씨는 초음파 과목 출제위원이었다.
채용의 공정성을 위해 보통 국가 기관에서는 외부 기관에 문제 출제를 의뢰한다. 출제자 명단을 비밀로 하고, 출제위원들은 채용 기간 '통제된' 생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A씨가 해당 과목 출제위원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개된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A씨와 함께 평소에 일하는 임시직과 인턴들이 정규직 채용에 지원하는 전형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A씨는 "오타를 수정해 달라"며 함께 일하는 임시직과 인턴에게 시험 문제를 보여줘 구속됐다. 하지만, 설사 문제를 일부러 유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평소 A씨의 성향과 업무에서 중시하는 분야 등을 잘 아는 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외부 지원자들이라면 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출제 과정은 더 부실했다. A씨에게는 개인 컴퓨터가 없었다. 문제를 낼 때는 일터에 있는 공용컴퓨터를 이용했다. 출제 후 문제가 담긴 문서 파일은 암호도 없이 공용컴퓨터에 저장했다. 직원이라면 누구나 열어볼 수 있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실제 한 부하직원은 A씨가 해당 파일을 공용컴퓨터에 저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파일을 열어본 후 평소 함께 일하던 지원자에게 문제를 유출하기도 했다.
각 부서 출제위원이 낸 문제는 교육담당 직원이 취합한다. 어느 부서 직원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취합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직에서 모두 알고 있었다.
영상의학과 5급 직원 B(39)씨는 이런 점을 악용했다. 문제를 이메일로 취합한다는 사실을 미리 안 B씨는 교육담당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컴퓨터에 접근했다. 취합된 문제를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 빼돌린 B씨는 문제를 인쇄해 역시 평소 함께 일하던 지원자이자 임시직 직원에게 보여줬다. 이 직원은 결국 합격했다.


문제를 유출한 이들은 공통으로 "평소 함께 일하던 임시직 직원들을 돕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엇나간 온정 때문에 결국 암센터와 연이 없는 외부 지원자 175명은 영문도 모르고 채용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암센터 정도의 권위 있는 기관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채용을 진행했을 줄은 수사관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라며 "시험출제 외부기관 위탁 등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기존 채용 과정에서도 부정 사례가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jhch79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