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인권의학연구소, 의대생 대상 설문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국내 의과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절반이 병원 실습이나 수업 등에서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대 여학생들은 10명 중 2명 가량이 학습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학연구소와 2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개최하는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앞두고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여학생 743명·남학생 1천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 결과 등을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예비 의료인 교육과정에서의 인권침해 현황과 권위주의 문화와의 관련성을 파악하고자 한 최초의 실태조사라고 인권의학연구소는 설명했다.
설문에서 지난 1년간 병원 실습이나 수업 기간, 학업과 관련된 모임에서의 경험 여부를 물은 결과,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자는 872명으로, 절반에 가까운 49.5%에 달했다. 물리적으로 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자도 120명(6.8%)으로 적지 않았다.
특정 과에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위협, 논문·보고서 갈취 등 학업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는지 묻는 항목에는 459명(26.0%)이 그렇다고 답했다.
단결을 앞세워 단체 기합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282명(15.9%)으로 나타났다.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이나 불쾌한 행동을 경험한 응답자는 194명(11.1%)으로 집계됐다. 성별로 나눠 보면 신체적 성희롱을 경험한 남학생은 5.7%(58명), 여학생은 18.3%(136명)로, 여성이 남성의 3.2배 수준으로 높았다.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남학생 44.5%(453명), 여학생 72.8%(541명)로 집계됐다.
'전공과 선택에서 제한과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학생은 58.7%로, 남학생보다 3.3배가 높았다.
그러나 폭력과 강요, 성차별, 성희롱 등을 경험한 학생의 3.7%만 대학 또는 병원에 신고했다.
신고하지 않은 주요 이유로는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42.6%), '공정하게 문제가 다뤄질 것 같지 않아서'(31.9%) 등을 꼽았다.
실태조사를 수행한 인권의학연구소는 학교 측의 도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 도움으로 조사가 이뤄졌다는 데 이번 조사의 의의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전화했는데도 학교 당국 차원에서의 협조가 거의 없었다"며 "학교 측의 이런 무관심은 권위주의 구조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의 현실에 눈을 감는 처사이자, 학교의 문제점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폐쇄적 학사 행정의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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