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외국인 거액 투자자에 시민권·거주권 부여 '제동' 나서

입력 2019-01-24 01:52  

EU, 외국인 거액 투자자에 시민권·거주권 부여 '제동' 나서
중·러·미국인 주로 혜택…"부패·돈세탁에 악용 우려"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지금까지 일부 유럽연합(EU) 회원국은 50만 유로(6억5천만 원, 1유로=1천300원 환산)만 투자하면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해왔으나 앞으로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3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회원국들이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거액을 투자하는 역외 외국인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단속할 것을 촉구했다.
사실상 거액을 주고 시민권을 사는 셈인 이른바 '황금 비자, 황금 여권 제도'가 부패나 돈세탁, 세금회피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이런 제도의 주된 수혜자는 중국인이나 러시아인, 미국인으로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신원조회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집행위의 지적이다.
베라 요우로바 EU 사법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원국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주는 특혜를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황금 비자, 황금 여권 제도'가 돈세탁과 부패를 막으려는 EU의 노력을 약화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수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부패나 돈세탁, 세금회피 등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U에서는 한 회원국에서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얻으면 다른 회원국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며 각종 선거에도 참여할 수 있다.
EU 관리들은 각 회원국이 국적을 부여하거나 철회하는 조건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EU의 관련법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회원국인 불가리아, 키프로스, 몰타 등은 50만 유로에서 200만 유로(26억 원)만 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EU 집행위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통상적인 절차를 밟아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달리 시민권을 취득한 국가에 계속 거주하거나 이들 국가와의 연계성을 입증하라는 요구도 받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거액 투자자에게 시민권을 마구잡이로 부여하는 이런 제도가 다른 회원국에까지 심각한 안보적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EU 집행위는 경고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EU가 이런 대책 마련에 나서자 이 제도를 철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불가리아와 몰타, 키프로스는 물론 영국, 체코, 에스토니아,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다른 17개 회원국들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거주허가증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집행위는 투자자에 대한 거주허가증 부여 제도도 이런 제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주허가증을 부여받았는지 알 수 없는 등 투명성에 대한 감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행위는 회원국들이 EU 법이나 국경관리 규칙, 돈세탁과 세금회피 등을 따르지 않는다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 집행위는 역외 외국인 투자자에 시민권이나 거주허가증을 부여하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그룹을 구성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베를린에 있는 '국제투명성기구'와 런던에 있는 '글로벌 위트니스'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지난 10년간 외국인 투자자 6천명에게 국적을, 10만명에게 거주허가증을 부여하고 그 대가로 250억 유로(32조5천억 원)를 유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bings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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