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 지킨 이순신상 50년史
이전 장소 지목됐던 세운구역 생가터도 재개발 앞둬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나라를 지키라고 세워둔 이순신 동상을 정부 청사 문지기로 쓰면 되겠습니까."
이순신의 장인 방진(1514∼?) 보성군수의 후손 방성석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상임이사는 지난 23일 황당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광장을 넓히는 건 좋지만 동상을 그 자리에 두고 넓히면 왜 안 되나요? 역사를 너무 도시공학적으로 보는 게 아닌지 우려됩니다."
예상치 못한 반발 여론에 이순신 동상 이전 방안은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1일 새로운 광화문광장 설계를 공개하고 이순신 동상을 북서쪽 400m 떨어진 정부종합청사 인근으로 옮기자는 설계자 제안을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순신상을 재설치하거나 철거하자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2010년 동상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당시 충무로로 재배치하자는 말이 나왔다. 1970년대 후반에도 동상 고증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서울시는 새 동상을 만들겠다며 정부 허가를 받고 예산을 확보했으나 10·26 사태 여파로 흐지부지됐다. 그러니 이전·철거 주장은 이번이 최소 3번째다.
기단 10.5m·동상 6.5m로 높이 총 17m인 이순신상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전 해군사관학교 충무공연구부 교수)은 "세종로, 태평로가 뚫려 있어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니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풍수지리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광화문 사거리로 위치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 상황상 해체 선박 엔진, 놋그릇, 놋숟가락 등을 끌어모아 작업했다. 청동 고유의 색이 안 나와 청록색 페인트와 동분을 섞어 표면에 칠했다. 재료의 균질성이 떨어지니 부식에도 약했다. 2010년 동상 속에 내시경을 넣어 '건강 검진'을 한 뒤 경기도 이천 공장으로 옮겨 40일간 전면 보수를 한 이유다.
동상이 그해 12월 23일 광화문에 복귀한 이후에도 '정통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패장처럼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고, 칼은 일본도이며, 입은 갑옷이 중국 갑옷이라거나, 표준 영정이 아닌 제작자 고(故) 김세중 서울대 교수의 얼굴을 닮았다는 주장 등이다.
오른칼·왼칼 논란에 대해 서울시는 "충무공이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가까이 적을 대면하여 칼을 뽑으려는 임전 자세가 아니라, 적을 물리친 승리자의 모습과 조국에 충성한 수호자적 인물의 상징적 자세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라고 설명한다. 고 김세중 교수 측은 현충사에 있는 장군의 칼이 실제로 일본도이고, 표준 영정은 동상 제작 이후 제정됐다고 해명해왔다.
이순신 장군의 고향을 현충사 소재지 충남 아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장군은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나 8세까지 살았다. 현재 행정구역상 서울 중구 인현동 신도빌딩 정도로 추정된다. 빌딩 입구엔 가로 50㎝·세로 60㎝ 크기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라 쓰인 안내판이 붙어 있다. 2017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자비로 설치했다. 한때 이곳으로 동상을 이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생가터는 최근 논란이 된 '세운재정비촉진구역'에 속해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서울 중구는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을 받아 기념 시설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으나 진척은 없다. 중구 관계자는 "생가터가 속한 세운 6구역은 아직 개발이 본격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시민 의견을 수렴해 이순신·세종대왕 동상의 이전 여부를 결정한다.
세종대왕상은 2009년 5월 광화문광장 중앙에 10.4m 높이로 세워졌다.
서울시는 2011년 두 동상의 지적 재산권 관리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원에 맡겼다. 광고 촬영, 작품사진 등 영리 목적으로 두 동상을 활용할 경우 사용료를 내야 한다.
2012∼2018년 7년간 쌓인 사용료는 총 2천860만9천원이다. 연 400만원가량의 수익금은 수수료를 제하고 모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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