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소비심리 부진 속 소비 증대 '미스터리'…"정책 효과 강해"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김수현 기자 = 민간소비가 경제 성장을 견인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투자가 부진에 빠진 지난해 소비마저 버텨주지 못했다면 경기가 급격히 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 부진, 고령화 등 소비 여건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난 소비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소비 성적으로 나타났지만 정부 그림자가 비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성장률은 비슷했지만…건설 비중 줄고 소비 기여도 확대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소비는 1년 전보다 2.8% 늘었다. 증가율은 2011년(2.9%) 이후 가장 높았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연간 경제성장률(2.7%)보다 0.1%포인트 높기도 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기는 2005년 이후 처음이었다.
민간소비가 성장동력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은 근래 보기 드물었던 일이다.
앞서 2015∼2017년에도 연간 경제성장률은 2% 중후반∼3%대 초반으로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기여도 측면에서는 건설의 힘이 컸다.
건설업 성장기여도는 2015년엔 0.3%포인트, 2016년 0.5%포인트, 2017년엔 0.4%포인트를 기록했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확대한 영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SOC 예산을 줄이고 복지 예산을 확충하며 경제 정책의 초점을 가계 소비 여력 확대로 옮기면서 성장의 내용이 달라지게 됐다.
지난해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는 1.4%포인트였다. 지난해 성장률(2.7%)의 반 이상을 민간소비가 밀어 올렸다는 얘기다. 민간소비는 수출(1.7%포인트) 다음으로 성장기여도가 큰 부문이기도 했다.
반면 앞서 주택 공급이 지속해서 늘어난 후유증으로 건설업은 조정받았다. 지난해 건설업의 성장기여도는 -0.2%포인트로 2011년(-0.3%포인트)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부의 소득 증진 정책이 민간소비 증대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정부의 보조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소비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임금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그런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이라며 "유류세 인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가 뒷받침한 성장은 지속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소비 증대는 기업 이익 증가, 투자 활성화, 고용 증대, 가계소득 증가, 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을 구축할 수 있다.
아울러 국민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가 대외 변수에 덜 흔들리는 등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소비 증가 '반짝' 우려…양질의 일자리·기업 투자 활성화 필요
그러나 지난해 민간소비 증대는 지속가능한 성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 여건만 보면 민간소비가 오히려 둔화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평이다.
소비가 늘어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난해 고용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이후 최소였고 실업률은 2001년 이후 가장 높았다.
고령화가 개선된 것도 아니다.
연금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수명이 길어지면 가계는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 이 때문에 소비성향이 하락해 민간소비 증가가 제한될 수 있다.
민간소비가 확대한 지난해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소비자심리가 연초에는 예년보다 좋았다가 연말이 되면서 가파르게 꺾였다는 점도 민간소비 증대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정부 정책 '약발'이 없었다면 민간소비 증가가 쉽지 않았던 셈이다.
이는 반대로 보면 정부 지원이 꾸준히 지속하지 못할 경우 민간소비가 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민간소비를 꾸준히 확대하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신산업, 신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 재정지원에 의한 소비 증가는 한계가 있다"며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소득이 늘어나야 민간소비 증가가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민간소비 숫자가 잘 나온 것은 그나마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시간을 벌었다는 의미"라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porqu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