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변화 절실한 벤투호…빌드업 스피드↑·포스트 기성용

입력 2019-01-27 07:04  

[아시안컵] 변화 절실한 벤투호…빌드업 스피드↑·포스트 기성용
빠른 빌드업과 과감한 침투 패스·기성용 대체할 공격조율사 '절실'



(아부다비=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8강 탈락의 고배를 마신 한국 축구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따갑다.
지난해 9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은 볼 점유율을 높여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측면을 활용한 빠른 공격 전환으로 득점을 노리는 방식으로 '지지 않는 축구'를 이어왔다.
결과적으로 벤투호는 지난해 9월 코스타리카 평가전(2-1 승)을 시작으로 2019 아시안컵 16강 바레인전(2-1 승)까지 11경기 동안 무패(7승 4무)를 이어가다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 0-1로 무너지며 연승 행진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성적표로만 따지면 12경기에서 단 1패만 당한 것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시안컵만 한정해서 본다면 저하된 경기력과 비효율적인 공격 전개로 팬들에게 답답함만 안겨줬다.
그렇다면 '벤투식 축구'가 망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안컵을 앞두고 부상자 속출로 팀 분위기가 위축된 것도 있지만 벤투호 내부에서는 기성용(뉴캐슬)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는 분위기다.
기성용은 필리핀과의 조별리그 1차전 전반에 오른쪽 햄스트링 근육에 통증을 느끼고 교체됐고, 결국 필리핀전이 아시안컵 마지막 무대가 됐다. 재활에 힘을 쏟았지만 부상이 완쾌되지 못해 대표팀에서 '중도 하차'를 해야만 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난 뒤 기성용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 고참급 선수들은 대표팀 은퇴를 고민했지만 벤투 감독이 직접 설득해 이번 아시안컵에 동행했다.
무엇보다 기성용은 벤투호의 '점유율 축구'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4-2-3-1 전술을 가동하는 벤투호는 공격 전개 때는 좌우 풀백이 사실상 측면 날개의 역할을 맡고, 좌우 날개 공격수는 중앙 쪽으로 파고들어 중원의 공격 숫자를 늘리는 효과를 낸다.
좌우 날개와 공격형 미드필더는 상대 위험지역에서 빠르고 정교한 패스로 수비벽을 허물어 원톱 스트라이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 충실했다. 여기에 좌우 풀백들의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 역시 벤투호의 득점 루트였다.
출범 초기 벤투호 '점유율 축구'의 조율사는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은 중원에서 자신의 특기인 빠르고 송곳 같은 대각선 패스로 좌우 풀백 측면 돌파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이 부상으로 조별리그 1차전도 마치지 못하고 전열에서 빠지자 대표팀의 공격 전개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지고 말았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한 황인범(대전)을 '포스트 기성용'으로 가동하며 공백 메우기에 나섰다.
황인범은 중원에서 공격진을 향해 감각적인 침투 패스를 여러 차례 내주며 공격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황인범은 그러나 기성용의 장점인, 빠르고 송곳 같은 대각선 패스로 공격 방향을 전환해주는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중앙 수비인 김영권(감바 오사카)과 김민재(전북)에게도 대각선 크로스 패스를 주문했지만 볼의 속도가 느리고 궤적도 포물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는 황희찬(함부르크)의 부상 결장으로 황인범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주세종이 중원에서 공격 조율의 역할을 맡았지만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벤치에서 미드필더들에게 측면의 빈 곳으로 크로스를 계속 요구했지만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들은 실수를 두려워하며 가까운 선수에게만 패스해 볼을 지키는 데만 급급했고, 결국 백패스만 연발하는 모양새가 됐다.
빌드업에 속도가 떨어지고, 불필요한 패스가 난무하는 비효율적인 공격 전개로 결국 벤투호는 스스로 무너진 꼴이 됐다.


경기의 템포를 조율하며 송곳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준 기성용의 공백이 벤투 감독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벤투호는 3월 A매치 데이 때 재소집된다. 9월부터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도 시작된다.
태극전사들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기성용이 사실상 태극마크와 작별한 상황에서 '포스트 기성용'의 역할을 맡아 줄 선수를 육성하는 것과 불필요한 패스를 줄여 빌드업의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게 벤투 감독의 지상 과제가 됐다.
horn9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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