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협력을 요구하는 미국의 손짓을 계속 물리치고 있어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헝가리가 미국의 오랜 동맹국으로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바라고 있지만 오르반 총리가 이를 벗어나는 행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지난달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헝가리가 인접국인 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측근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병력을 계속 지원하기를 바라며 나토로부터 받은 안전보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 고위 관계자는 오르반 총리가 러시아와 중국이 유럽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압박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헝가리가 나토에 협력한다는 다짐을 존중하며 병력 지원도 늘리겠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선에 동참토록 하려는 노력에는 맞서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오르반 총리의 입장은 러시아와 거래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들이 중국을 상대하는 좋은 태도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에는 반항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최근 나토 회원국들이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활동에 맞설 더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회원국들이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도 주문하고 있었다.
오르반 총리는 그러나 두 가지 요구사항을 모두 물리치고 있다. 자국의 인터넷 인프라 사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요청하는가 하면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각료급 대화를 갖는 것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미국과의 방위협력협정에도 비협조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현지에 주둔하는 미군 사병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고 반입되는 군사 장비에 대한 관세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협정의 골자다.
당초 미국측은 오르반 총리의 정당이 의회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협정이 쉽게 헝가리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다.
협정이 의회에서 수개월 동안 묶여 있는 데 대해 오르반 총리는 집권당에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다. 미국 관리들은 지연 이유를 밝히는 그의 설명이 수시로 바뀔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하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주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오르반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밝혔지만 대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소식통들은 두 사람이 방위협력협정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에서 발흥하는 민족주의 물결에 앞장을 서고 있는 정치인이다. 이민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유럽연합(EU)이 도를 넘는 행보를 취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내면서 3선에 성공했다.
백악관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은 지난해 열린 유럽보수파 컨퍼런스에서 그를 "트럼프 이전의 트럼프"라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보다는 러시아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측의 평가다.
헝가리 정부 관리들과 오르반 총리의 측근들은 미국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이 복잡하다고 말한다. 총리 보좌관들은 주권과 외세로부터의 독립이 1998년 첫 집권한 이후 그의 핵심 대의였다고 전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미국 국무부는 헝가리에 대해 자주 비판적 성명을 냈으나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를 자제하는모습이다. 오르반 총리를 달래려는 의도다.
데이비드 콘스타인 미국 대사는 헝가리 민주주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한 것이 그 일례다. 전임 대사들이 헝가리 정부가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헝가리의 독립 언론들에 대한 지원금 사업을 취소했다. 현재 헝가리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들은 오르반 지지세력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은 2016년 멕시코의 마약 조직이 미 사법집행기관의 헬리콥터를 격추하는 데 쓸 무기를 판매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헝가리에 있는 러시아 무기 중개상 2명의 신병을 인도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헝가리측은 두 사람을 러시아로 추방했다.
지난해 12월 헝가리 국방부는 미국 방산업체를 외면하고 프랑스에서 헬리콥터, 독일에서 탱크, 스웨덴에서 공군 운용장비를 각각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미 첫 임기 시절인 2001년 9월 미국산 전투기 구매 계약을 철회해 미 행정부를 당혹케 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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